풍경 속의 작은 풍경

가톨릭부산 2015.10.27 18:32 조회 수 : 18

호수 1964호 2008.11.09 
글쓴이 정여송 스콜라스티카 

‘나’를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것들을 적어보라. 쉰 개, 천 개, 만 개가 넘도록 적을 수 있다. 주변에 놓여있는 삼라만상은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조건들이다. 삶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젓가락만으로도 온통 즐거울 수 있고, 나뭇잎 하나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으며, 풀벌레 소리만으로도 기쁨의 노래,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얼마 전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에서의 일이다. 대전까지 비어있던 내 옆 좌석에 중년여인이 탔다. 여인은 피곤했는지 곧 잠이 들었다. 기차가 조치원에서 정차했을 때 한 청년이 승차했다. 청년은 여인의 좌석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지나갔다. 기차가 수원역에 닿자 여인이 달콤한 잠에서 깨어났다. 청년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좌석번호를 물었다. 여인의 차표시간은 한 시간 뒤의 것이었다. “이 일을 어쩌나 미안해서. 깨우지 그랬어요?” “너무 곤하게 주무셔서 차마 깨울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푸근한 듯 사랑스러운 듯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괜히 마음이 즐거워졌다. 예전에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에는 어림짐작도 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이 비정하리만치 똑똑하고 약아졌다. 온정도 허옇게 탈색 되었다. 젊은이들이 어른공경을 등한시하는 일도 보편화 된지 오래다. 약인 줄 알고 먹기 시작한 편리한 지식이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각박해졌지만 즐겁고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촌스럽고 너그럽던 옛날의 마음들이 많아져야 한다. 젊을수록 더 고구마 같고 황토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인터넷 유머에 키득거리는 메마른 마음보다도 고구마 방귀처럼 냄새나는 웃음을 짓게 하는 마음이야말로 즐거움을 주고 정을 돈독케 하는 까닭이다.

그것을 말로 표현한다면 사랑이다. 천만 번을 들어도 언제나 듣기 좋은 말, 사랑. 하지만 사랑이란 말로도 다 채우지 못해 부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하느님도 따사로운 봄볕에 아지랑이를 만들고,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아지랑이를 보면서 눈물짓고, 노을을 보면서 다짐하고, 늘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그 청년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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