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15호 2018.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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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하창식 프란치스코 |
여권
하창식 프란치스코 / 사직대건성당, 수필가 csha@pnu.edu
해외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소지품은? 물론 여권입니다.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 모두에겐 더욱 소중한 여권이 있지요. 다름 아니라 세례성사 자체가 하느님이 보증하는 천국행 여권인 셈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하느님을 의지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통해 주어지기 때문에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데는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정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오늘따라 천국행 여권과 일반 여권의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국행 여권은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 차이, 직업의 귀천 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발부되는 여권이지만, 범죄자들에겐 여권이 발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죄인마저도 천국행 여권을 발급하여 주십니다. 그뿐입니까? 분실의 염려가 없는 천국행 여권은 더욱 특별합니다. 냉담하여도 천국 문을 활짝 열어두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복된 여권입니까?
하지만 여권만 가진다고 천국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입국사증, 곧 비자 없이도 입국이 가능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 비자가 없으면 입국할 수 없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은, 우리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한 사람들에게만 천국행 비자를 발급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국행 여권과 일반 여권의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여권에 날인되는 출입국 증빙 스탬프 곧 출입국 기록이 아닌가 합니다. 일반 여권에 기록된 해외여행 날짜와 다녀 온 나라들의 정보는 빠짐없이 우리 눈으로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행 여권에 찍힌 스탬프 또는 출입국 관리 기록은, 오직 하느님만이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는 그날이 되어서야, 우리 생애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우리들의 천국행 여권에 빼꼭히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이 지상의 소풍을 마무리하는 날 심판대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들이 살아생전에 가난한 사람들, 변두리에 있는 이웃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 횟수와 정성 따라 날인된 스탬프야말로, 천국으로 향하는 급행 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판의 그날, 감히 천국엔 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상에서의 삶으로 말미암아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도록, 오늘 하루 하느님의 뜻에 맞갖은 삶을 더욱 잘 살아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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