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2 22:59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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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2018-11-12/변혜영.

십년동안 꼬리표를 달고 살았는데, 11월1일에 병원에가서 그동안의 꼬리표를 버리고, 새로운 꼬리표를 받았습니다. “우울증”이라는 명찰을 받았습니다. 생각도 해 보지 않았는데, 그동안의 저의 정황을 보면서 이제는 생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느낌입니다. 오개월째 쉬면서,우물바깥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낮동안 내내 컴퓨터를 열고서 이곳 저곳으로 기웃거리면서 하루를 놀았습니다.

 

그동안 글방에 글은 올렸지만 제대로 다시금 읽어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조금씩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글방에도 들어가서 좀 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에 들어가서 기웃 기웃 거렸습니다. 온종일 이렇게 놀고 나니까, 왜 그동안은 몰랐을까 하면서 참 즐겁고 좋았습니다. 늦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라도 오늘을 보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식탁에서 식사를 할 때 그동안은 즐겁지 않았습니다. 대화에도 잘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냥 밥만 먹었는데, 최근에는 조금씩 대화에 끼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말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다른 수녀님과 함께 산책도 좀 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딱지를 이젠 벗어 버릴려고 합니다. 내일부터 산을 좀 걸을까 합니다. 우울증이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방안에 그냥 있는 것이 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방에서 쉬는 것을 그동안 사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활동적인 저다보니, 방안에서 쉰다는 것은 받아 들이지 못했는데요. 우울증이 오니까, 방안에서 잘 놀게 되더라구요. 온종일 방안에서 있어도 싫지 않은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이젠 방을 나가야 할 때입니다. 방에 칩거 하고 있으면 다른 곳에 가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일까요. 22일부터 휴가를 잡았는데요.

 

지인분들게 방문을 가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그냥 수녀원의 내 방에서 쉴까 하는 마음이 자꾸만 꾸물꾸물 올라 옵니다. 함안도 가야 하고, 하동도 가야 하는데, 약속은 철떡 같이 해 놓고, 마음이 바뀌면 취소 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약을 조절하고 있는 단계라서, 상황을 보면서 할까 합니다. 자기전에 약을 한알 먹습니다. 용량을 의사선생님이 자꾸만 높이고 있거든요. 얼마까지 높일지는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동안 감이 나와서 잘 먹었습니다. 감을 먹으면 변비로 고생하는 이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다행이 그렇지는 않았는데요. 대신에 몇일에 한번씩 볼일을 보니까, 오늘은 화장실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뚫어뻥을 부어 두었습니다. 내일 새벽에 물을 내려 볼까 합니다. 오늘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수녀님과 수다를 떨고 나니까, 훨씬 마음이 가볍습니다. 저는 말하는 것을 참 좋아 하거든요.

 

오개월동안 말을 별로 못했습니다. 다들 바쁘고, 나와 함께 놀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찾아 다니면서 주변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다행히 카카오톡이 되니까, 한번씩 문자로 연락을 길게 하게 되어 재미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알게된 자매님이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와서 최근에 연락을 자주 하고 지냅니다. 오늘은 낮에 한껏 놀아서 인지, 밤인데 잠이 오지 않아서 이렇게 몇자 적고 있습니다.

 

방송대 공부를 중단하게 된 것이 내내 마음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어쩔수 없는 씁쓸함이구요. 평생공부이니, 이젠 걷는 운동과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받아서 좀 읽어야 할까 싶습니다. 지금은 소임이 딱히 없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윤산을 조금씩이라도 걸으면서 방에서 나와야 합니다. 방이 너무나 좋지만, 방에서 나와야 제가 사는 것입니다.

 

햇볕도 쬐고, 땅을 밟으면서 걷기고 하고, 하늘도 보고, 나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플때는 자연안에서 치유를 받는 것이 최고입니다. 수요일엔 주방수녀님이 시장 가는데, 같이 동행하자고 하시어 다녀와야 하고, 목요일엔 이천의 병원에 가야 합니다. 수요일에 수녀님이 바다도 보고 오자고 하셨는데, 참 다행입니다. 시장 구경도 재미있지만, 바다를 보는 것은 참 즐겁거든요.

 

제가 오개월을 방안에서 지내면서,새로운 자신을 만났습니다. 방안에서도 잘 지낼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온통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지낼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 때라는 것이죠!!! 수요일에 오랜만에 주와리소바에 가서 점심을 먹을까 합니다. 사장님이 참 반가워 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 작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약 일년간 병원을 들락 날락 하면서, 많이 움추려 들었고, 현실에서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많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같이 사는 수녀님들과 원활하게 소통이 되지 않았고, 날질서를 쫓아 가는 것도 힘겨웠고,이방인처럼 살고 있는 자신을 수용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자신감도 떨어 졌고,뒤쳐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이고, 무엇이든지 자신 있었는데,그렇지가 않은 자신을 마음으로 품으면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미사중 오르겐 반주도 그동안 쉬었는데, 지난주 토요일부터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라도 토요일에 한번이지만 반주를 하면서,바깥으로 나올수 있길 바래 봅니다. 옛날에는 오르겐 반주를 하면서 감동도 참 많이 받았고, 은총도 듬뿍 받았는데, 다시금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면서 즐거이 하렵니다.

 

아픈 자신을 인정합니다. 맨 꽁지에서 수녀님들을 따라가는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잃을 것도 없고, 경쟁할 것도 없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잘 지내면 되니까, 온통 마음을 비우고, 처음처럼 수도 생활을 시작하는 그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잘 따르고 싶습니다. 오개월의 멈춤이 있었기에,오늘은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올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까지 베풀어 주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큰 자비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부족한 일생을 봉헌드리며,한걸음씩 천천히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드립니다. 우울증도 감사합니다. 아픈이들과의 친교가 감사하고, 이렇게 표현할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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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문협공복자 2018.11.16 21:09
    변혜영 수녀님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차서 우울증 명찰은 장롱 속에 넣어 버립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