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12호 2018.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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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
산티아고 순례길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 정관성당, 수필가 su303@hanmail.net
2016년 아내 글라라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한 해 앞서 혼자 다녀온 아내가 무엇이 좋았던지 값싼 비행기 표를 예약하여 나도 용기를 내어 함께 출발했다.
내 체중 위에 지워진 10kg의 등짐은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하였지만 글라라와 함께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를 거쳐 묵시아, 피스테라를 돌아 다시 산티아고로 입성하는 921.1km의 긴 장정을 34일 만에 마쳤다. 이어 20일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고도와 성지를 찾아 보고 54일 만에 귀국하여 서울의 절두산 성지를 찾아 무사히 돌아온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닿았다는 묵시아에 도착하여, 밀려와 부서지는 대서양의 하얀 포말에 피로를 씻기도 했다. 기어이 산티아고에 입성하여 수많은 인파와 화려한 성전과 흔들리는 향로의 성찬에 넋을 잃기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미명의 들길을 나서면 촉촉한 이슬이 바지를 적시고 신선한 감촉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어지는 아침기도와 삼종기도를 마치면 하루의 긴 여정이 밝아오는 새 아침과 함께 시작된다.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은 숨을 막히게 하였지만, 쉴 새 없이 바치는 묵주의 기도 속에 내 신앙의 현주소를 되새기고 과연 이 고난의 길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걷기도 했다.
어느 작은 마을에 마침 미사가 있어 조심스레 미사에 참례하였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신부님의 복음 봉독에서 훌쩍이고 있는 내 모습을 가까이 앉아있던 아내의 시선에서 느꼈다.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성경을 봉독하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내가 찾아가는 야고보 성인에 이어 야고보 성인이 목숨을 걸고 전도의 길을 나섰던 이 산티아고 길 위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내 미약한 존재도 그 길 위에 함께 한다는 것, 비로소 내가 찾아가는 존재가 산티아고의 경관도 야고보의 전설도 아닌 바로 예수님 그분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내 작은 믿음에도 문득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복음을 읽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느끼고 보게 된 것이다.
감기와 몸살을 견디고 가까스로 회복한 나의 지친 몸은 생기를 얻었고 남은 여정에 힘이 되었다. 나의 나약한 정신에 문득 찾아오신 주님. 만나는 사물마다 사람마다 아름다운 빛깔로 나에게 다가왔다. 땀에 절어 있는 지친 몸이란 어쩌지 못하는 실존의 멍에를 짊어졌지만 우리는 순례를 마치는 시간까지 두 다리와 두 개의 지팡이에만 의존하여 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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