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1. 연중 제28주간 화요일(대리구미사)
① 갈라 5,1-6 ㉥ 루카 11,37-41.
주님의 기도 첫째, 둘째 구절 요약
!!. 우리는 지난 일동안 기도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중요한 기도의 원칙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기도는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께 의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께 의탁하듯이 이런 믿음의 관계에서 우리는 주님과 대화하고 친교를 나눕니다. 주님과의 대화에서 기본적인 우리의 자세가 겸손과 순명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중심적인 기도입니다. 이런 주님의 대화는 단계가 있습니다. 기도의 영적인 성숙단계입니다. 이번 토요일 축일을 맞이하는 대데레사성녀는 기도의 단계를 4단계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 형태로서 염경기도, 묵상기도, 화살기도, 관상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내용으로 분류하면 청원기도, 중재기도, 감사와 찬미기도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의 모범이요 완성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우리는 올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울 뿐 아니라, 완전한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기도에 대한 전반적인 묵상을 하고 난 다음, 우리는 지난 7월부터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복음의 요약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이 청원기도의 형태는 하느님 아버지와 대화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또는 성모님과 나누는 사랑의 대화임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치든, 미사를 드리든, 성체조배를 하든, 성독을 하든, 우리의 기도는 근본적으로 주님과 나누는 사랑의 대화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주님의 기도 첫 구절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이 구절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는 분입니다. 속된 땅위에 사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즉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의 역사와 삶에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삶속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임마누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에 계시는 전능하시고 절대적인 하느님이 우리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갈라4,4~5이 아름답게 설명합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대데레사 성녀는 예수님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늘은 이제 우리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은 예수님과 함께 성령의 힘으로 우리 마음에, 우리 영혼안에 계십니다.
이 하느님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근본적으로 공동체적인 기도입니다. 우리는 한분의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형제들로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님의 기도 첫구절은 복음의 모든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단한분의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라는 진리입니다. 이 사랑의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실현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당신 십자가죽음과 부활로써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인간 사이에 영원한 사랑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진리를 1요한3,1이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첫구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구절의 묵상을 마치면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마치 고아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진짜 영원하신 아버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지배자이시고, 죽음을 넘어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행복으로 초대하시는 참된 영원하신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고아입니다. 정말 비참한 고아입니다. 이런 까닭에 세상에 아무리 재산이 많고, 건강하고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하더라도, 신앙이 없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고아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아버지도 모르고, 죽어서 갈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생살이에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인자하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또 어떤 고통 중에서도, 예수님이 함께 함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든든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두 번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이름은 그사람의 인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나타나실 것을 청하는 이 구절에서, 거룩함은 바로 하느님의 모습,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느님이 하느님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고, 우리는 그 하느님을 하느님으로서 섬길 수 있길 청하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은 하느님의 모습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천지의 창조주이시오,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이외에 다른 하느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유일하시고 단한분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두 번째 구절은 참되고 유일하신 하느님만을 섬기고, 다른 헛된 신을 섬기지 않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헛된 우상과 미신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생활에서는 무신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일미사를 소홀히 할 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여러 가지 이유는 결국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섬기고 있는 일종의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또 마태복음에 의하면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물질을 과도하게 좋아하고 집착하고, 돈에 목을 맬 때, 우리는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또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필립3,18~19)라는 필립비서 말씀대로 우리의 욕심을 너무나 중요시할 때, 역시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자신을 섬기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런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참된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할 수 있길 청하는 것입니다. 이 참된 믿음과 사랑의 은총이 우리에게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