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03호 2016.10.09 |
---|---|
글쓴이 | 박주영 첼레스티노 |
하느님을 만나는 거리
박주영 첼레스티노 / 조선일보 부산취재본부장 park21@chosun.com
얼마 전 영화,‘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봤습니다. 조선 말기 지리학자로 유명한‘고산자, 김정호’의 삶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백성들의 편익을 위한 지도를 만들려는 김정호와 막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의 야심, 세도를 온존시키려는 안동 김씨의 욕심 등이 충돌하는 것을 스토리텔링의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에는 김정호의 딸,‘순실이 이야기’가 콱 와 박혔습니다. 순실이는 지도에 미쳐 가족도 잘 돌보지 않는 고산자의 외동딸입니다. 아버지의 돌봄이 없었지만 순실이는 참 맑고 발랄한 처자로 컸습니다.
그런데 순실이는‘천주쟁이’였습니다. 아마‘천주’께서 그를 돌보시어 그렇게 반듯이, 명랑하게 컸을 듯 했습니다. 순실이는 병인박해(1866년, 고종 3년)때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다 그만 순교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순실이의 죽음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비의 보살핌도 없이 홀로 큰 여자아이가‘천주’를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 믿음, 그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조선의 가톨릭 전래는 순실이의 시대로부터 대략 260년 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학자인 이수광이 임진왜란 후 1590년대 말쯤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마테오 리치가 쓴‘천주실의’란 책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또 1631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란 사람이 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귀국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톨릭은‘책’,‘학문’으로 조선에 전해졌습니다.
그러다가 1784년‘이승훈’이란 27살의 청년이 청나라 수도 북경의 북성당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았습니다.‘베드로’가 본명이었습니다.‘학문’,‘이론’이었던 가톨릭이‘신앙’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후 성리학, 유교 사회였던 조선의 사회·권력체제와 갈등을 빚으면서 신해(1791년, 정조15년), 신유(1801년, 순조 1년), 기해(1839년, 헌종 5년), 병인(1866년, 고종 3년) 등 박해를 받았습니다. 박해 때마다 100~8,000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병인 때에 가장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갈수록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났던 것입니다.
앳된‘순실이’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학문이 먼 거리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이라면, 이승훈의 영세는 하느님께 더 다가간 것이 아닐까요? 순실이는 그보다 더 가까이서 하느님을 만났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야곱이 동틀 때까지 하느님과 씨름을 했던 것(창세 32, 23~33 참조)처럼… 저는 얼만큼의 거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을까요?
호수 | 제목 | 글쓴이 |
---|---|---|
2418호 2017.01.22 | 미사 안내를 하고 나서 | 박주영 첼레스티노 |
2417호 2017.01.15 | 사랑하고 깨어있으라 | 김상원 요셉 |
2416호 2017.01.08 | 거짓증언이란? | 이영훈 신부 |
2414호 2016.12.25 | 다리 건너 그 곳 | 오지영 젬마 |
2413호 2016.12.18 | 연도는 무형문화재다 | 김상진 요한 |
2412호 2016.12.11 | 콧구멍 집 | 하창식 프란치스코 |
2411호 2016.12.04 | 편리함과 숫자에 가리워진 사람들 | 변미정 모니카 |
2409호 2016.11.20 |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 조원근 마르티노 |
2408호 2016.11.13 | 불확실한 세상, 확실한 하느님 | 탁은수 베드로 |
2407호 2016.11.6 | 온누리에 햇살 고루 나누어 주시는 주님 | 공복자 유스티나 |
2406호 2016.10.30 | ‘성과’라는 새로운 질서 | 이영훈 신부 |
2405호 2016.10.23 | <특 집> 기초공동체 복음화의 해 - 연도회란! | 김의수 임마누엘 |
2404호 2016.10.16 | 비움과 채움 | 이종인 디오니시오 |
2403호 2016.10.09 | 하느님을 만나는 거리 | 박주영 첼레스티노 |
2402호 2016.10.02 | 길에서 만난 사람들 | 최순덕 세실리아 |
2401호 2016.09.25 |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 김검회 엘리사벳 |
2400호 2016.09.18 | 노인대학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 노인대학연합회 |
2399호 2016.09.11 | 찬미 받으소서! | 남영자 마리아 |
2398호 2016.09.04 | 미국이 부러운 이유 | 김상진 요한 |
2397호 2016.08.28 | 한 개의 빵은 어디에? | 정재분 아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