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07호 2018.0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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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형 신부 |
순교 성인들에게 드리는 고백
김태형 신부 / 성소국장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지 못한 나약함과 비겁함 때문에, 무거운 죄책감으로 오랜 시간 짓눌려 살아왔던 시간이 목숨을 잃었던 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신 말씀인 듯합니다.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축일을 만나면 왠지 모를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에 무거운 짓눌림을 느낍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켰고 옥에 갇혀도 양심은 자유로웠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정하상 바오로, 101위의 순교자들 이름 위에 아로새겨진 피의 증언은 세상 안에서 그저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비겁함을 채찍질하는 듯합니다. 칼 라너가 말했던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본래의 신학적 문구가 아니라 신앙을 세상 앞에 당당히 드러내 놓고 증거하지 못한 채 그것이 마치 고상한 신앙인 양 비겁하게 숨기고 살아가는 말 그대로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말입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신분을 감추고 이름을 감추었던 지난날의 비겁함이 자신 안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압니다. 끌레셔츠의 로만 칼라를 한쪽으로 밀어 넣고 단추 하나를 풀어버리는 순간이 늘 무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압니다. 식당에서 그은 움츠린 십자가는 이 길을 함께 가는 동료 사제들의 아픔에도 움츠러들곤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맞는 자신의 불편함은 그들의 숭고하고 위대한 신앙심에 짓눌려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비겁한 신앙이 짓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라고 묻는 이에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라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새벽을 깨우는 닭울음 소리에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던 회개의 눈물을 함께 따라 흘리며, 딱히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미세한 두려움이 항상 공기처럼 누르기에 참아 드러내 놓고 행동하고 말하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을 한국의 순교 성인들에게 고백하며 그분들처럼 순교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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