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06호 2018.09.16 |
---|---|
글쓴이 | 김나현 가브리엘라 |
우리 집 성모님
김나현 가브리엘라 / 수필가 yanni33@hanmail.net
이사 온 첫날 밤에 딸이 꿈을 꾸었다고 했다. 가슴까지 덮은 이불을 들추고서 산발한 귀신이 목을 쑥 내밀더라는 거다. 꿈에서 얼마나 놀랐는지, 꿈 얘기를 할 때 딸 표정도 다시 파랗게 질렸다.
그런 식의 꿈을 이사한 후에 더러 꾼다는 믿건 말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비슷한 꿈을 또 꾸면 어쩌나 해서다. 고심하던 머릿속으로 구원자가 떠올랐다. 바로 성수였다. 이보다 나은 대처는 없다는 확신으로, 딸 방과 다른 방까지 구석구석 뿌리며 중얼중얼 기도했다. 방마다 성모상과 묵주도 비치했다. 후로는 다행히 그 같은 꿈을 꾸는 일은 없었다. 성수와 성모님 덕분이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 집에는 성모상이 네 개 있다. 딸이 꿈을 꾼 후 서둘러 방마다 하나씩 모셔 두었다. 거실에 둔 성모상은 키가 30cm 정도의 일반적인 은혜의 성모상이다. 다른 성모상은 이래저래 상처 입었는데 이 성모상만 온전하다. 바라만 봐도 평온해지는 표정이다.
딸 방에 둔 갈색 성모상은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손자가 떨어뜨려 가슴팍에서 두 동강이 났다. 나는 그때 사람이 다친 양 비명을 지르곤 접착제로 붙여 놓았다. 그 후 같은 곳이 또 부러져 땜질했다. 어깨를 앞으로 살짝 수그리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늙은 내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표정은 어찌나 정결하고 해맑고 여린지, 오히려 보듬어 주고 싶은 성모상이다.
안방 성모님도 목부터 어깻죽지까지 땜질 흔적이 있다. 역시 손자들 손에 떨어져 다쳤다. 잠자는 머리맡에 둔 성모상은 조그맣고 낡고 볼품없다. 언제 부러졌는지 조그만 손 하나가 부러져 나가고 없다. 그러나 이 성모님은 잠자는 나를 지켜주고 빛으로 당신 존재를 알린다. 야광 성모상이다. 밤중에 잠시 깰 때 환히 빛나는 형체에 눈이 닿으면 두 손을 모으거나 성호경을 긋고 자리에 눕게 된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세는 게 아니라 주모경을 외게 하는 성모님.
성모상을 한자리에 모아 오랜만에 먼지를 닦는다. 어떤 간절함이 있을 때나 닥친 큰일 앞에 기도 말고는 할 게 없어 무력할 때 묵주와 함께 찾는 우리 집 성모님들.
내 능력 밖의 지혜가 필요할 때나, 잠시 옆길을 걸을 때도 나를 변함없이 지켜보고 인도하는 성모님이 우리 집에 계시다.
호수 | 제목 | 글쓴이 |
---|---|---|
2865호 2025. 4. 13.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 안덕자 베네딕다 |
2864호 2025. 4. 6. | 최고의 유산 | 양소영 마리아 |
2863호 2025. 3. 30. |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 박시현 가브리엘라 |
2862호 2025. 3. 23. |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
2861호 2025. 3. 16. |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
2860호 2025. 3. 9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 프란치스코 교황 |
2859호 2025. 3. 2 | ‘나’ & ‘우리 함께 together’ | 김민순 마리안나 |
2858호 2025. 2. 23. | 예수님 깨우기 | 탁은수 베드로 |
2857호 2025. 2. 16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 최경련 소화데레사 |
2856호 2025. 2. 9. |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
2855호 2025. 2. 2 |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
2854호 2025. 1. 29 | 이 겨울의 시간 | 윤미순 데레사 |
2853호 2025. 1. 26 | 우리가 사랑할 때 | 윤경일 아오스딩 |
2852호 2025. 1. 19 |
2027 세계청년대회 WYD가 시작되었습니다!
![]() | 한미현 에스텔 |
2851호 2025. 1. 12 | 우리와 같으신 그분 | 강은희 헬레나 |
2850호 2025. 1. 5 | 새 마음, 새 각오 | 원성현 스테파노 |
2848호 2024. 12. 29 | 우리 가정에 예수님 모시기 | 이준혁 사무엘 & 강선희 루치아 |
2846호 2024. 12. 22 | 들음의 성모님을 만나다 | 오지영 젬마 |
2845호 2024. 12. 15 | 나의 신앙 일지 | 서현우 요셉 |
2844호 2024. 12. 8 | “그 누구도 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이영훈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