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03호 2018.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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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하창식 프란치스코 |
선택
하창식 프란치스코 / 사직대건성당, 수필가 csha@pnu.edu
영국 글래스고 출장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암스테르담을 거쳐 인천으로 향하는 연결 편을 이용할 예정이었습니다. 체크인 카운트에 긴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항공사 직원을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강풍을 동반한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암스테르담 도착/출발 편이 모두 결항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결항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다림 끝에 제 차례가 되어 체크인 카운트에서 도움을 요청하니, 다음날 런던을 통해 인천으로 귀국하는 연결 편으로 예약 변경을 해주고 공항 근처 호텔에서의 숙박 쿠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매우 난처했습니다. 예정대로 귀국하면 다음날 계획하고 있는 중요한 일들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겠지만, 뜻밖의 상황 발생으로 그다음 일정들이 차례로 꼬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상 악화로 인한 암스테르담행 항공편 취소와 그에 따른 모든 일정/여정 변경은 전혀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항공사로서도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예정에도 없었던 공항 인근 호텔에서 하릴없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오늘의 독서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1독서 말씀에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여호 24,15)라는 주님의 말씀이, 예기치 않았던 오늘의 상황에 대해 주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 같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호텔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 지나간 삶 속에서 오늘의 상황과 같이, 제가 선택하지 않았던 사건, 사고들이 수도 없이 저와 함께 했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뜻밖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만을 선택한 것보다는 요행처럼 다른 무엇인가에 더 많이 매달렸던 것 같아 문득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번 여행에서와 같은 뜻하지 않은 상황들을 맞이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주님 대신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섬기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게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우리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대체 항공편으로라도 안전하게 귀국하도록 도움 주신 것만 해도 주님이 제게 일으키신 은총의 큰 표징(여호 24,17 참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왜 하필 오늘 내게 이런 일이?”라는 원망이 들었지만, 말씀 묵상과 함께, 오늘의 이 상황도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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