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01호 2018.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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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주영 첼레스티노 |
착한 목자의 목소리
박주영 첼레스티노 / 남천성당, 언론인 park21@chosun.com
요즘 영화가에선 ‘신과 함께’란 영화의 인기가 111년 만의 기록을 깼다는 ‘한증막 더위’만큼이나 뜨겁습니다. ‘신과 함께-인과 연’이라는 이 영화는 개봉 5일 동안 540만 명을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매일 하루 100만 명 이상이 영화를 봤다는 겁니다.
역대 최단 시간 500만 명 돌파, 하루 최다 관객 기록(1,466,416명) 등 종전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작년 연말 개봉한 이 영화의 1편인 ‘신과 함께-죄와 벌’은 관객 144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언론에선 “역대 관객 동원 1위인 영화 ‘명량’의 기록(1762만 명)을 뛰어넘을까?”, “1편과 2편을 합해 관객 동원 3000만 명의 대기록을 세울까?” 등으로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제 눈엔 이런 기록들보다 물질만능, 감각중심의 세태에 ‘신(神)’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영화가 이렇듯 인기를 끄는 것이 의외로 비쳐집니다.
물론 이 영화는 ‘신(神)’을 정통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샤머니즘, 도교적 관점에서 본 저승의 세계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만화적 상상과 영화적 흥미, 디지털 기술적 가공 등을 더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를 제 방식으로 다르게 읽어 봅니다. 티베트 불교에 ‘사자의 서’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티베트어로 ‘바르도 퇴돌’이란 불경입니다. ‘바르도’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세계를 뜻한답니다. ‘바르도’는 우리말로 ‘중음천’쯤 됩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차태현 등이 지나가던 심판 단계와 비슷합니다.
‘퇴돌’은 ‘듣는 것을 통한 영원한 해탈’이란 의미랍니다. 이 두 단어를 합한 ‘바르도 퇴돌’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는 중간에서 한 소리를 들어 해탈을 한다’는 얘기가 된다. ‘사이의 세계에서 한 소리를 들어 환생과 업보의 악순환에서 벗어난다’는 정도의 뜻이라고 합니다.
제가 훗날 세상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요한 10,14~16)
저는 가장 먼저 저승의 어둠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이승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이웃 안에서, 미사에서 주님을 뵈려 노력해야 합니다. 교우들의 연도도 큰 힘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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