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갈 것들

가톨릭부산 2016.08.31 10:03 조회 수 : 142

호수 2398호 2016.09.04 
글쓴이 서진영 신부 

더 오래갈 것들

서진영 미카엘 신부 / 대양전자통신고 교목

  세상엔 참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도, 곱게 물려주고 싶은 것도 참 많습니다.
  사랑, 우정, 희망 같은 아름다운 어휘들과 이를 위한 약속, 계획, 실천 같은 단어들 그리고 이를 드러내는 감사, 성취, 보람 등이죠. 이 조합들이 특정 상황에서 우리를 미소 짓게도 하고 울리기도 합니다. 그 자체로 묵묵히 살아갈 힘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라는 희망에서 참으로 좋은 말들을 많이도 하고, 많이도 퍼 나릅니다.“만약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영화‘중경삼림’에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멋진 말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오래 살 자신이 없어서.
  어떤 이가 간절히 기도한 끝에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죠.”“성가 423장에 그렇다고 하더구나.”“하느님, 그럼 천억도 주님 보시기엔 그저 1원 정도겠죠?”“그 정도겠네.”“그럼 그 1원 저에게 주시면 안 돼요?”“그래. 내일 줄게.” 이제 기쁘게 천년을 기다려야겠지요. 그래도 유통기간‘만년’보다는 짧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기다릴 자신도 능력도 없습니다.“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 41)는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아쉽게도, 생각하는 것에 비해 많이 부족합니다. 계획은 쉽게 세우지만 그것을 실행하기는 어렵고, 특히 오랫동안 지켜가기는 너무나 허약합니다.
  복음에 나오는‘탑 짓는 이들’처럼 시작은 했으나 끝을 보지 못하는 성급함이 우리 대부분의 결점입니다. 물자와 자본이 넘치는 호황기에 시작해서 정작 완성될 때는 낭패를 보게 되는‘마천루의 저주’가 예사 이야기 아닌 고민해야 할 현실이 된 상황에서 우리는 따져 보아야 합니다.
  말 한마디 먼저 했다고 해서, 그 약속이 좀 더 크다고 해서, 그 범위가 더 넓다고 해서 아름답거나 특별히 더 기억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천년만년’은 아니지만 이 짧은‘백 년’을 두고, 더 오래가고 아름다울 봉헌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할지, 얼마나 충실해야 할지 주님 앞에서 셈해 보았으면 합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file 최정훈 신부 
2896호 2025. 11. 2  우리의 영광은 자비에 달려있습니다 file 염철호 신부 
2895호 2025. 10. 26  분심 좀 들면 어떤가요. file 최병권 신부 
2894호 2025. 10. 19  전교, 복음의 사랑으로 file 김종남 신부 
2893호 2025. 10. 12  우리가 주님을 만날 차례 file 한종민 신부 
2892호 2025. 10. 6  복음의 보름달 file 김기영 신부 
2891호 2025. 10. 5  느그 묵주 가져왔나? file 김기영 신부 
2890호 2025. 9. 28  대문 앞의 라자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file 정창식 신부 
2889호 2025. 9. 21  신적 생명에 참여하는 삶 file 조성문 신부 
2888호 2025. 9. 14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 file 박재범 신부 
2887호 2025. 9. 7  더 크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file 이재원 신부 
2886호 2025. 8. 31  행복을 선택하는 삶 file 박호준 신부 
2885호 2025. 8. 24  ‘좁은 문’ file 이영훈 신부 
2884호 2025. 8. 17  사랑의 불, 진리의 불 file 이영창 신부 
2883호 2025. 8. 15  마리아의 노래-신앙인의 노래! 김대성 신부 
2882호 2025. 8. 10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깨어있는 행복! file 김대성 신부 
2881호 2025. 8. 3  “만족하십시오.” file 이재혁 신부 
2880호 2025. 7. 27  “노인(老人)=성인(聖人)” file 정호 신부 
2879호 2025. 7. 20  마르타+마리아=참으로 좋은 몫 file 이균태 신부 
2878호 2025. 7. 13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file 계만수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