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06호 2014.12.25 
글쓴이 황철수 주교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

교구장 황철수 바오로 주교

뜻깊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모든 분들께서 새롭게 예수님을 만나시어 예수님께서 선물하시는 사랑으로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복음 성경의 이야기는 넓게 보면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성모님, 예수님을 만나는 제자들, 예수님을 만나는 군중과 병자들, 예수님을 만나는 사제, 학자, 군인, 세관원,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복음서를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만남 이야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새롭게 각성되어 이른바 눈을 뜨는 사람과, 눈을 뜨기는커녕 더욱 고착되어 시야가 닫히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입니다.‘나는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고 왔다’는 요한 복음의(9, 39) 말씀은 이러한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富)와 재물에 최고의 가치를 둔 사람에게‘가난한 마음’을 강조하시는 예수님이 잘 보일까요? 권력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힘이 없는 무력한 존재로 보이지 않겠는지요. 헛된 공명심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비우고 낮추는’겸허한 마음을 초석으로 삼으시는 예수님은 주목할 필요가 없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현하시는‘새로운 세계’와 만난다는 것이고, 제대로 만난 사람은 그 새로운 세계에 각성되어 자기의‘낡은 세계’를 허물고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삶과 정신을 통해‘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뜨지 못했다면 정말 예수님과 제대로 만났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 이야기는 예수님께서‘세상과 처음으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과 온전히 만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비우며 내려오신 예수님의 그 첫걸음이, 대중들의 환호와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 떠들썩한 출발이 아닙니다. 그것은‘내로라’하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런 출발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주류세상이 주목하지도 않고 언론이 눈길도 주지 않는‘목동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눈뜬 자’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 이야기를 단순한 목가적 이야기로 읽기보다는,‘본다고 하면서도 실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로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성탄을 통해 선포되는 이 메시지를 묵상하며,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아직 어떤 눈을 더 떠가야 하는지를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한 해를 부지런히 살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뜻깊은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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