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

가톨릭부산 2015.10.17 01:11 조회 수 : 18

호수 2296호 2014.10.19 
글쓴이 김준한 신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

김준한 빈첸시오 신부 / 감물 생태학습관 행정부관장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1독서 : 이사 2, 4) 이는 가장 어리석은 말입니다. 남을 해치려는 목적이 없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자신을 방어할 수단조차 내던지는 것은 엄혹한 현실경쟁사회에서 스스로 도태하고 말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말입니다. 과연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우리 또한 거기로 초대하신 바로“당신의 길”(이사 2, 3)이라고 한다면, 복음의 길은 위험한 길입니다. 시대를 거꾸로 살 것을 요청하시는 주님의 뜻은 우리 일상의 가장 중요한 그 기반을 다시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유다인들의 박해를 피해 패잔병처럼 뿔뿔이 흩어진 제자 중, 기껏 몇이 갈릴래아로 낙향한 모습을. 갖은 고생과 열정을 다해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도달한 수도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인적 드문 갈릴래아로 후퇴하여 초라한 몰골로 주님을 대면한 제자들. 어쩌면 교회는 처음에도 그랬지만 마침내도, 더는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베이스캠프 일지도 모릅니다. 기가 꺾여 곧 쓰러질 듯 흔들리는 군상들을 다시 불러 모으신 주님의 행동은 처음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를 부르신 그때보다 보기가 더 딱할 지경입니다.

바로 이런 하찮은 존재가 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감히“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마태 28, 18)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권한이라는 것은 더는 영웅적이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새로운 권한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바를 냉정하게 무시하는 권한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으로 제자들은 돌을 빵으로 바꿀 수도 없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무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권력에 굴복한다고 요행히 삶이 행복해지는 일도 절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4, 1 이하 광야의 유혹 참조)

주님이 주시는 이 권한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전교뿐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위대한 권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이“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마르 1, 7)이라고 소개한 주님이, 우리에게“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요한 14, 12)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바로 그 권한입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 앞에 가난한 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고 그 믿음을 이웃에게 고백할 때,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선물인‘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으로 말미암아 그 이웃과 더불어“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 1)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296호 2014.10.19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 김준한 신부 
2295호 2014.10.12  하느님의 부르심에 늘 깨어 응답하는 삶 김태형 신부 
2294호 2014.10.05  두 개 혹은 세 개의 세상 조영만 신부 
2293호 2014.09.28  촉망받는 아들의 회개 권동국 신부 
2292호 2014.09.21  역설의 삶 최요섭 신부 
2291호 2014.09.14  주님께서 십자가에 현양되신 것은 하느님 참사랑의 선물 맹진학 신부 
2289호 2014.08.31  십자가를 진다는 것 강헌철 신부 
2288호 2014.08.24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강병규 신부 
2287호 2014.08.17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도정호 신부 
2285호 2014.08.10  그분만 바라보라 이세형 신부 
2284호 2014.08.03  빈손들인 우리 신진수 신부 
2283호 2014.07.27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오용환 신부 
2282호 2014.07.20  함께하려는 마음 전재완 신부 
2281호 2014.07.13  있어야 할 자리 서강진 신부 
2280호 2014.07.06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시는 고통들을 참아 받겠느냐?” 김강정 신부 
2279호 2014.06.29  교황님은 누구? 박혁 신부 
2278호 2014.06.22  첫영성체 곽길섭 신부 
2277호 2014.06.15  성령, 신비, 전례 신호철 신부 
2276호 2014.06.08  용서라는 열쇠 박종주 신부 
2275호 2014.06.01  하늘을 산 자만이 하늘에 오를 수 있다 김현일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