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들인 우리
신진수 골롬바노 신부 / 물금성당 주임
하느님의 섭리는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굶주리지 않을 만큼 무궁하다. 복음이 이야기하듯 하느님께서는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보살피신다.(마태 6, 25∼26 참조) 배고픔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인간의 죄로 인한 다른 모든 악을 가져와 배고픔도 왔다. 배고픔이 지속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오늘 복음 말씀의 예수님은 군중을 보시고“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14, 14 참조) 가엾은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외딴 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당하는 군중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 16)하고 이르신다. 이때 제자들은 자신이 빈손임을 절감한다. 그래서“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마태 14, 17)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이 없으면 제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손들이다. 제자들 역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의 빈손을 통해서 당신의 놀라운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먼저“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신다.”(마태 14, 19)그러고는 제자들은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내용은 최후의 만찬 대목과 동일한 내용이다. 만찬 석상에서 주님은 빵을 손에 들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과 최후의 만찬은 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오천 명의 군중이 먹은 것은 단순히 육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빵이 아니었다. 제자들의 빈손을 통해서 주님은 당신 몸을, 당신 생명을 당신의 사랑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이신 것이다. 요한 복음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 51)“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 14)
오늘 우리도 이 기적을 체험한다. 영적 굶주림을 겪는 빈손들인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주님의 생명을 주님의 사랑을 먹는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들이다. 우리는 빈손들이다. 빈손인 우리를 통해서 주님은 빵의 기적 때 제자들이 한 일을 수행하도록 촉구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의 생명을 굶주린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도록 초대하신다. 주님 안에서 우리 빈손들이 나눈다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