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81호 2014.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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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강진 신부 |
있어야 할 자리
지난 가을 하늘공원에 부임하고 추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겨우내 메마르고 얼어있던 이곳에 봄이 오고 파릇파릇 돋는 싹을 보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특히 봄을 맞이하며 묘지를 둘러싸고 만개한 벚꽃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환상적이었습니다.“그래서 이곳이 하늘공원이구나!”하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감동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묘지 위로 쑥쑥 솟아나는 잡초는 저의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늘공원에서는 그동안 받지 않던 매장묘 관리비를 작년부터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가족들의 요구는 분명해졌고 그것은 바로 벌초였습니다.“이게 뭡니까? 관리비까지 받으면서 왜 우리 묘는 벌초하지 않았어요?”불만에 찬 항의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벌초해야 합니다.“그래! 이제부터 풀과의 전쟁이다.”
5월 부터 4명의 직원들과 함께 5만 평의 묘지를 누비며 풀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초기의 무게와 진동으로 손이 떨려 숟가락조차도 들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은 검게 그을러 가면서 점차 익숙해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땀보다는 자연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부쩍부쩍 자라는 잡초를 벱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들의 적(?)인 잡초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일 잡초에서 핀 이 꽃들이 묘지가 아니라 산이나 들에서 피었더라면, 사람들이 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좋아들 할 텐데.’
그렇습니다. 오늘도 베어지는 잡초의 꽃들은 산과 들판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들꽃들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자리가 다를 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 역시 그러합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이나 좋은 땅이나 똑같은 씨앗이 뿌려집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당신의 온갖 정성을 쏟아 우리를 창조하셨고 사랑을 주셨으며 소중히 지켜주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하더라도 묘지에 피어있다면 베어 버려야 할 잡초꽃이듯, 우리들은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모든 이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줍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자리는 어떠합니까?
주님께서 주신 오늘 하루를 은혜롭게 생각하고 감사드리고 있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하는지. 그렇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것, 더 나아가 바로 이 자리에서 감사드리고 찬미드릴 수 있을 때, 좋은 땅이며 바로 우리가 서야 할 자리입니다. 지금 비록 자신의 처지가 힘들다 하더라도 좋은 땅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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