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72호 2014.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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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경렬 신부 |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권경렬 베드로 신부 / 아미성당 주임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聖召(성소)란 말 그대로 거룩한 부르심-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를 죽으라고 부르십니다. 한 처음에 흙을 빚어 당신 얼을 불어넣자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 흙덩이 속에 들어와 계신 하느님의 얼을 통해‘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죽는 일임을 우리는 일생동안 배워가게 됩니다.’이 한 가지를 배우라고 그분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부르실 때도 내가 죽으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죽어야‘참 나’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겠다 싶을 때가 바로 내가 하느님을 만나는 때이고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때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나는 죽습니다. 나의 온갖 집착도 죽습니다. 나는 죽고‘참 나’가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얕은 생각은 죽고 깊은 생각, 거룩한 생각이 솟아납니다. 소유욕은 죽고 존재 자체의 기쁨이 되살아납니다. 온갖 걱정근심과 삿된 욕망에서 풀려납니다. 생사를 넘어서 지금 여기서부터 이미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누립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거룩한 얼,‘참 나’를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성소입니다. 이 진흙 같은 내 인생 안에 깊이 들어와 계시는 놀라우신 하느님! 그분의 목소리에, 양심의 소리에 이제라도 순종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 거룩한 부르심에 기꺼이 응대하면, 그분을 점점 닮아 사랑만 오롯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우리의 성소가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 딸임을 자각하고 살다가 그분께서 부르시면‘예’하고 그 품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사람은 흙이 하느님으로 되어가는 자리입니다. 이 흙 안에서 하느님의 얼이 누룩처럼 점점 퍼져나가는 과정이 우리 인생입니다. 진리이시고 선이시고 영원한 아름다움이신 하느님을 늘 그리며 살다가 마침내 이 흙덩어리가 산산이 흩어지고, 우리 인생이 끝장나고 우리가 죽는다 해도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를 그렇게 죽으라고 부르십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으로,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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