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은 단순한 나눔이 아닌 자비의 실천
손원모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 노동사제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선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에 입각하여 물질적, 경제적,정신적인 원조를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넘어,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자선을 간주해 왔습니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선, 즉 자비의 실천은 초자연적인 덕성인 애덕(愛德)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래서 그 원천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대신애(對神愛)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선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측면에서 영육 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든 고뇌를 경감시켜주는 봉사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자선 사업에는 애덕의 7가지 실천, 곧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일,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일, 집 없는 자에게 머물 곳을 제공하는 일, 병든 자를 방문하는 일, 감옥에 있는 자를 방문하는 일, 죽은 자를 묻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복음적 권고를 실천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자비를 입을 수 있다(마태 5, 7 참조)는 예수님의 말씀따라, 우리가 자비를 받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자선은 우리가 그저 베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그 사람도 역시 자비를 입게 되는 양면적인 것입니다. 또한 자비는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비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악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 삶의 모습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구세주로서, 또한 장차 재림하실 분으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현세의 삶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일관되게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빛의 자녀라면 언제 어디서나 자비로운 태도를 가져야 하며,이러한 자비의 실천은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삶의 가장 확실한 표현방식일 것입니다. 따라서 자선은 우리를 하느님 자비의 바다로이끌어 주는 명확한 이정표임을 기억하고, 삶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다해 실천해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입을 것이다.”(마태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