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46호 2013.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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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상효 신부 |
식별(識別) - 거룩한 숙제
김상효 필립보 신부 / 화봉성당 주임
데려갈 하나와 버려둘 하나
‘아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의 모든 것을 거울에 비춰보듯 환하게 결정지어 주실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데려갈 하나와 버려둘 하나를 미리 확정하고 따로 떼어놓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선함과 악함이, 내 안에 뒤섞여 있고, 우리 안에 뒤섞여 있고, 세상 속에서 서로의 몸을 뒤섞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마다 우리는 당황해 합니다. 진리의 얼굴을 한 허위, 봉사의 얼굴을 한 탐욕, 공공의 선익을 목표로 내세우는 착취, 죄인으로 낙인이 붙은 가난한 사람, 잉여인간으로 치부되는 선량한 사람, 실패자로 불려지는 관용을 베푸는 이…
더구나 이런 혼돈이 매우 구조적이거나 기술적인 사실들 뒤에 숨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우리는 쉽게 대세를 따르는 것으로 양심을 달랩니다.
노아의 방주와 방주의 노아
그럼에도 ‘이미’ 와 계신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삶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가려내고, 구별하고, 찾아내고, 알아보도록 촉구하십니다. 내 안에, 우리 안에, 이 세상 안에 참다운 가치와 영원의 모습이 담긴 당신의 피조물들이 가득 차게 되길 바라십니다.
노아의 방주란 수동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지어놓고 누군가(혹은 무엇인가가) 들어오길 기다려야하는 운명. 그것이 노아의 방주라면, 방주의 노아는 찾아 나서야하는 예언자의 운명입니다. 방주를 지음으로 소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것들의 의미를 알고, 그러는 사람들의 속내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챙겨내야만 될 진주를 캐내는 일. 그것이 방주의 노아가 겸손되이 져야할 거룩한 숙제입니다. 그리고 그 숙제는 ‘결국’의 시대를 기다리며 사는 우리가 져야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깨어 있기 위해
- 모두가 나쁘다고 말하거나 양쪽 다 옳다고 말하는 것은, 말하고 있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식별에 이르는 길을 뭉개버리면서 식별의 열정을 지닌 이를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 애정을 지니고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은 애정을 담고 있을 우리의 내면 한 구석도 허락하지 않기도 합니다. 성적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얽매인 임금노동자, 육아에 치이는 부모에게 식별을 위한 애정이 자리 잡을 여유를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내가 못나서…’라는 자괴감에 함몰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 탓이 아닌 문제들이 허다합니다.
- 식별을 위한 정보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나에게 들이닥치는 정보의 총량이 진실의 총량은 아닙니다.
부디 더 많은 방주의 노아들이 거룩한 숙제를 감당하게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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