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92호 2018.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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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도아 프란치스카 |
생명의 무게
김도아 프란치스카 / 장림성당, 노동사목 행정실장 free6403@hanmail.net
지난해 성탄절, 저는 제 안에 새 생명이 잉태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마주하게 된 2mm의 생명은 참으로 신비롭고 경이로웠으며, 탐스러운 올리브열매 한 바구니를 받는 태몽 역시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결혼 후 1년 6개월 남짓, 적지 않은 나이에 혼인을 하고 기다려온 아기였기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한없이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부모님과 가족, 지인들의 축하는 물론 사회사목센터 식구들의 열렬한 축복도 받았습니다.
임신은 여러 가지 몸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구토와 두통, 가려움과 변비에 시달려야 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부터 냉장고 문을 여는 것까지 괴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임신성당뇨 검사를 위해 12시간 이상을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여러 번 피를 뽑아야 하기도 했지요. 이렇듯 임신은, 40주에 걸쳐 몸속 내장기관과 갈비뼈가 밀려나고 골반이 내려앉는 변화 속에서 자신의 영양분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생명을 키워내는 과정입니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신체에 주는 부담은 매우 분명함에도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죄 폐지와 관련하여 사회가 여성을 단순히 무책임하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임신과 출산처럼 낙태 역시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결코 무책임해질 수 없습니다. 또한, 낙태는 과거 산아제한과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현재는 의료적·사회적·경제적인 이유들로 기혼여성들에게서도 행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자유로운 성관계의 무책임한 결과만이 문제라면, 낙태죄는 왜 여성과 의료인만이 적용되고 생명잉태의 다른 축인 남성은 빠져있는 것일까요? 낙태한 사실에 여인들의 고백성사는 많지만, 남자들의 고백성사는 거의 없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는 어느 신부님의 글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생명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우리 교회는 단순히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의 불합리함에 대해 지적하고 보다 나은 법안을 제안하며, 지켜낸 생명들을 끝까지 잘 돌보고 키우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자녀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적, 교회적 지원이 늘어나고 미혼모자에 대한 시각이 유연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생명의 신비를 하루하루 느끼고 있는 요즘, 생명과 관련된 논란들에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생명의 잉태가 그 자체로 모든 이에게 축복이 되는 때에, 하느님 나라는 보다 가까운 곳에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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