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당신의 자비에 저희를 의탁하나이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 몰운대성당 주임
오늘은 부활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로서, 부활절에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입었던 흰옷을 벗는다 하여 전통적으로는 ‘사백(卸白)주일’이며, 2001년부터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 불리는 날이다. 후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기념하도록 당부하신 데서 시작되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1905~1938)는 가난했으나 신앙심이 두터운 가톨릭 농부 집안의 10남매 중 세 번째로 태어나, 12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가정부로 일하며 동생들의 생계를 도우다 20살에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일찍부터 영적 은총의 삶을 살아왔던 성녀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다. 예수님께서는 한 손으로 붉은색과 흰색의 두 갈래 빛이 비쳐 나오는 자신의 성심을 움켜쥐고, 다른 손을 내밀어 강복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성녀에게 예수 성심을 공경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성녀는 자신의 일기에서 첫째,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성경이 전하는 신앙의 진리를 세상에 일깨우고 둘째,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을 실천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며 셋째, 이 신심운동의 목표는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위한 것이라 요약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하느님 자비의 사도’였던 파우스티나 수녀를 대희년과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는 가톨릭교회를 위한 첫 성인으로 시성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처절한 죽음은 제자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고, 빈 무덤은 토마스 사도를 방황하게 하였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토마스의 불신앙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의 숨을 불어넣어 주시면서 세상의 죄를 용서하는 ‘자비의 사도’로 파견하신다. 세상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단죄하였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런 세상을 용서하라고, 자비를 베풀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신 것이다.
잠시 각자 자신에게 ‘예수님을 본 적이 없음에도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지’ 물어보자.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에 속하며,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가 되었음을 깨닫자. 부활하신 주님은 일찍이 하느님의 첫 숨을 받아 생명체가 된 우리를(창세 2,7 참조) 오늘 다시금 성령의 숨으로 탄생시켜 세상과 이웃을 향한 자비의 사도가 되게 하신다. 단지 일상이 주는 정신적, 물리적 고통과 시련에 맞서지 못하고 쉽게 주저앉아 버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세상을 향하여 나가자. 내가 먼저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고, 어떤 잘못이든 용서하지 못하는 자와 용서받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용서에 사랑을 더하여 자비를 베푸는 사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