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87호 2016.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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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양희 레지나 |
고우십니다
김양희 레지나 / 수필가 supil99@hanmail.net
오래된 노송이었다. 신록으로 물든 힘찬 담쟁이 넝쿨이 아름드리 소나무 둥지를 휘감아 운치를 더한다. 우이동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자 울창한 수목들이 눈웃음을 보내온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마저 세속의 기운을 멀리한 수도원의 정적을 불러온다.
검정 수단이 발목까지 내려온 젊은 수도자 한 분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고우십니다.’그 인사말이 참 정겹다. 여인이라면, 뉘라서 곱다는 말을 멀리하고 싶을까. 붉은 적송을 감싼 저 빛깔 고운 담쟁이 잎새처럼 우리 또한 곱게 황혼을 맞이하라고, 바람이 소리 없는 말을 전해 온다.
수도원의 새벽은 싸늘하다.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두런두런 눈인사를 나누며 북한산 올레길을 걷기 위해 모여들었다. 김밥 한 줄과 생수 한 병. 소박한 아침으로는 충분하다. 침묵의 도보는 내 안의 그분과 대화하는 시간. 이슬 머금은 보랏빛 구절초 몇 송이가 아침 인사를 전해온다.
올레길에서 돌아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오감으로 스미는 행복의 기운을 느낀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한 잔의 커피가 돼 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위해서만 달려온 시간의 궤적들이 마음 안뜰에 고인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는 가끔씩 수도원을 찾는다. 하느님이 존재하는 집. 어딘들 주님 없는 곳이 있으랴만 그러나 이 세상에는 수도원이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느님이 계심을 믿을 수가 있다. 고귀한 일생을 주님 위해 바친 수도자들의 헌신적인 삶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아들들. 참으로 고우신 분들은 보이지 않는 주님 위해 전 생애를 바친 그분들의 삶이 아닐까.
곱다는 것의 사전적인 의미는 참하고 추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정을 살리는 세 가지 씨앗은 말씨, 맵시, 마음씨라고 한다. 온화한 말씨와 단아한 맵시, 그리고 상대방을 살리는 고운 마음씨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함께 살리는 덕목이다.
사람의 앞모양은 가꿀 수 있으나 뒤태는 바꿀 수가 없다고 한다. 가꿀 수 있는 앞모습은 교양, 인격, 품위 등이겠으나 바꿀 수 없는 뒷모습은 교만, 이기심, 술수 등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고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수양이 필요할 것이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초록 물이 뚝뚝 돋는 성하의 계절. 내면의 아름다움과 그분 보시기에 고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끔씩은 수도원을 찾아 내면을 가꾸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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