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4. 연중 제11주간 화요일(대리구미사)
① 1열왕 21,17-29 ㉥ 마태 5,43-48.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 사랑을 주는 것
!!, 오늘 대리구미사에 오신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오늘 마태5장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오늘 복음은 아름답고 심오한 은총이 있기 때문에 기도에 묵상을 잠깐 접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겠습니다.
!!, 우리는 매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레18장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옹기장이와 옹기그릇 사이의 관계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예레 18,6)
그러나 세례를 받으면, 하느님과 우리의 사이는 더 이상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부모자녀가 됩니다. 하느님과 우리가 부모자식의 관계가 되는 이유는 예수님과 한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한몸을 이루면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의 은총입니다. 이 세례의 은총은 곧 생명의 은총입니다. 즉 이때까지 우리는 단순한 피조물 중에 하나인 자연적인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살았지만, 세례로써 하느님의 생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잘 성장해야 정상적인 인간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세례로 받은 하느님의 생명도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받은 생명의 이 은총이 어떻게 자랄 수 있는지, 그래서 진정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그 은총의 길을 설명해 줍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
이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그 과정을 아름답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크고 작은 원수들과 박해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안 식구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본당신자일 수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에게 상처주고, 경우에 없는 행동을 하고,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이기적이고 속좁은 사람이라도 무한히 사랑해 주십니다.
자연적인 인간의 사랑은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주는 사람은 피하든지 복수합니다. 이런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비방하는 자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우리의 자연적인 인간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 만일 이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천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지니게 됩니다. 바로 이 사랑이 하느님의 모습이요 유전인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DNA를 우리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원수에 대한 사랑과 박해자들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신격화시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은 원수나 박해자를 사랑할 때,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사랑하는 우리쪽이 변화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가 형제를 초자연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제를 사랑하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받는 수혜자는 우리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또는 상대방이 회개하는냐는 문제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 복음의 핵심은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신격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받음으로써가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신격화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중대한 진리가 있습니다. 사랑받음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을 줌으로써 신격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님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도 사랑을 주기 위한 준비단계입니다. 사랑을 줄 줄 모르면, 일생 미성숙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축복을 받고, 은총을 받는 것은 모두 사랑을 주기 위한 준비단계요 사랑을 주기 위해서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받음으로써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습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사랑을 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20,35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결론으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싫은 그 사람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와 1베드서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12,14; 1베드3,9)
따라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주님,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화살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물론 내 본심은 축복할 맘이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본심으로는 하느님처럼 사랑하기 어렵기 때문에 요한15,4의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는 말씀대로 주님께 사랑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길 청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믿음의 행동이 하루 이틀, 일년, 이년이 지나면, 우리가 서서히 하느님의 자녀로 탈바꿈하게 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오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전 일생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 주님과 함께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축복과 은총이 우리에게 길이 내리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