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적 사랑과 희생

가톨릭부산 2015.10.15 04:55 조회 수 : 25

호수 2148호 2012.02.19 
글쓴이 원정학 신부 

수용적 사랑과 희생

원정학 바오로 신부 / 교정사목 담당

요즘 사회를 돌아보면 ‘참 진실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쪽에서는 칭찬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비난하고 진실이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어느 말이 옳은가 나름 판단해 보지만, 설 자리를 잃은 채 등을 돌려버리는 꼴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은 고의로 이런 식의 ‘물타기’ 수법을 자주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말하기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만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전히 신앙인들은 사랑, 일치, 생명, 친교, 복음, 진리, 행복, 개혁, 기강, 생명이란 단어들을 나름대로 필요에 맞게 말하고 실천을 요구하겠지만, 사람들은(신자든 아니든) 기쁨이나 감동을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기쁨을 얻고, 감동을 받기 위해 일상을 무시한 채 피정이나 기도회, 사이비(또는 유사) 종교에 몰입할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군중 속에서 가르치실 때 몇몇 사람이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걷어내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줄을 달아서 내려보냅니다. 안식일에 지붕을 벗겨 내고 환자를 내려보내는 것도 율법을 어기는 것인데 병을 고쳐달라는 청을 합니다. 게다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지켜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너의 죄는 용서 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을 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 문제로 넘어가서 ‘신성모독’이 적용됩니다. 단순해 보였던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여전히 걸림돌이며 기존 체제를 붕괴시킬 위험한 존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하심으로써 중풍병자에게 안식일의 위법적인 요구까지 하십니다.
오늘날 이 상황에 ‘물타기’만 하면 얼마든지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특히 저는 사제로 살아가고 있지만 매 순간 부딪히는 사회의 위협 속에서 가정과 공동체, 나아가 참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말과 조직, 체계로서가 아니라 수용적 사랑과 희생의 모범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 실천을 다가올 재의 수요일(22일)에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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