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그리운 이름

가톨릭부산 2015.10.15 02:34 조회 수 : 21

호수 2132gh 2011.11.06 
글쓴이 김강정 신부 

죽어서도 그리운 이름

김강정 시몬 신부 /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늘 두려운 게 한가지 있습니다. 심판대에서 주님을 만나야 할 걱정입니다. 그날에 제가 드릴 수 있을 말씀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기껏 생각해낸 한 마디가 “저는 사제로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것 말고는 도무지 자랑삼을 게 없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이 못난 사제의 고백이 부디 초라한 변명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수도자로 일생을 봉헌했습니다.” “저는 레지오 단장을 했고, 사목 위원이었고, 성가대를 했으며, 반봉사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화려한 업적들을 묻지 않으실 겁니다. 그 속에서 빠뜨린 나의 진짜 삶을 요구하실 겁니다. 정작으로 중요한 건 기름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의 차이는 아주 미미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한테서 기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기름이 약간 모자란 것뿐이었습니다. 이 근소한 차이가 빚어낸 엄청난 결과를 결코 잊어선 안 될 겁니다.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평신도로서 소명의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분에 합당한 기름이 필요할 겁니다. 내실이 결여된 외적인 열심은 아무런 공로가 되지 못할 겁니다.

기름이 떨어져 애를 태우는 이들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름 없이 등잔만 들고 주님을 만나러 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더는 어리석은 선택은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우선적인 선택은 오로지 주님 한 분뿐, 우리를 우리답게 지켜주는 이름은 그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 외에 어떠한 것도 그 이름을 대신할 수도 앞서서도 안 될 겁니다. 우리에게서 주님을 빼고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른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 당신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얼굴이 전혀 낯설지 않고, 늘 뵈온 듯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을 위해 오늘의 준비를 서두르겠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맞을지를 먼저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버릴 건 버리며, 잡을 건 잡겠습니다. 잡아야 할 걸 놓치고 사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할 겁니다. 버려야 할 걸 붙들고 사는 미련은 다신 없을 겁니다. 두 번은 당신 손 놓는 일 없을 겁니다. 심판 하나만을 생각하고 그날 하루만 보면서 살겠습니다. 그날 제 영혼은 날개를 달고 당신과 아름다운 비행을 할 겁니다. 당신을 향해 훨훨 드높이 날아오르는 순간,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시작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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