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과 부활절

가톨릭부산 2018.03.28 09:54 조회 수 : 111

호수 2482호 2018.04.01 
글쓴이 박주영 첼레스티노 

목련꽃과 부활절
 

박주영 첼레스티노 / 남천성당, 언론인 park21@chosun.com
 

  목련이 피고 말았습니다. 이리 저리 다니다 양지바른 곳곳에 하얀 목련꽃의 그 고운 얼굴을 만나  화들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깜놀 추위’에 금정산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는 날이었습니다. 날이 차서 몸은 움츠러들고, 두툼한 옷도 꺼내 입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아직 겨울인데. 그런데 목련꽃이라니… 중년을 넘어서니 그 화사한 봄날이 마냥 즐겁게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춘래불사춘이라, 제 초봄의 한구석엔‘우울’이 쭈그려 앉아 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사순 시기를 잘못 보냈나 봅니다. 단식하고 기도해야 했는데… 그래도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그분이 있습니다. 아니 다시 만나야 하는 분이 계십니다.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요한 20, 1~8)
  막달라 여자 마리아로부터“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앞다퉈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동이 터오는 새벽 댓바람에 옷자락, 머리칼이 휘날렸습니다. 숨이 가빠졌습니다. 그래도 뛰었습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던 두 제자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대사제 등이 보낸 무리들에게 붙잡히시자 모두 도망갔고, 더욱이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었는데…‘그분이 사라지셨다!’놀람, 걱정, 기쁨…? 아마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못난 저도 달려갑니다. 사순 기간 단식도 안 했고 담배도 못 끊었고 직장 회식에서 술에 취해 해롱대기도 했던… 아내에게 모진 말들을 하고‘고딩’인 딸에게‘학원 지각한다’고 신경질을 부렸던 저도 말입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 주님께서 불현듯 나타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저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하고 물으실 듯합니다.
‘부활체험’은‘내 공덕’덕분이 아니라‘주님의 은총’이라는 부끄러운 변명을 해봅니다. 티끌 같은, 먼지 같은 저를 잊지 않으시는 주님께 감사 편지를 씁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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