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더 깎으면 되나요?

가톨릭부산 2015.10.14 01:07 조회 수 : 72

호수 2350호 2015.10.18 
글쓴이 성지민 그라시아 

뭘 좀 더 깎으면 되나요?

 

성지민 그라시아 / 노동사목 free6403@hanmail.net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응? 이게 누구지?’갸우뚱거리고 있을 때 친구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면서“니도 못 알아 보겠제? 내 이력서 사진 아이가!” 라고 합니다.‘도대체 얼마나 고치고 깎았기에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제 친구의 일만은 아닙니다. 이런 이력서 사진만 전문으로 찍어주는 사진관은 30분 단위로 예약이 잡혀있고, 당일 예약은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자기 얼굴을 고치고 깎아가며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흔히 말하는 취업,‘노동’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 사진을 이렇게 준비하고 있으니, 자신만 안 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거금 10만 원을 들여가며 스스로의 얼굴을 깎아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어떤 현수막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엄마아빠 일하는 시간 줄이고 월급 깎아 내 일자리(비정규직)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문구로 기억합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노동개혁과 임금피크제에 대한 이야기지요. 임금피크제를 통해 부모님의 정년을 늘려주는 대신 자식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청년 일자리가 많아진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지금 일자리들은 계약상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언제나 자르기 쉽게, 임금도 적게 주기 위해 1년도 아니고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며 비정규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청년고용을 의무화하기보다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 놓고, 당연히 신입사원을 뽑아야 하는 기업의 의무조차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노동개혁 정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의 깎인 월급으로 제 친구들이 취업을 해도‘그래, 2년만 참으면 정규직(현 정책)이야’라고 생각했던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납니다. 다시 4년을 참고 열심히 일했지만 기업에서 경영난을 언급하며 다시 값싼 노동력을 찾아‘일반(쉬운)해고’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사진을 깎으며 시작된 취업이 부모님의 임금마저 깎아야 얻을 수 있는 건가요?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깎게 만드는, 정당한 노동으로 임금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추승학 베드로 
2896호 2025. 11. 2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김경란 안나 
2895호 2025. 10. 26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김지수 프리실라 
2893호 2025. 10. 12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정성호 신부 
2892호 2025. 10. 6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2891호 2025. 10. 5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차재연 마리아 
2890호 2025. 9. 28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2889호 2025. 9. 21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88호 2025. 9. 14  순교자의 십자가 우세민 윤일요한 
2887호 2025. 9. 7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2886호 2025. 8. 31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2885호 2025. 8. 24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2884호 2025. 8. 17  ‘옛날 옛적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83호 2025. 8. 15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2882호 2025. 8. 10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2881호 2025. 8. 3  십자가 조정현 글리체리아 
2880호 2025. 7. 27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걸으리라. 도명수 안젤라 
2879호 2025. 7. 20  “농민은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하느님의 정원사입니다.” 서현진 신부 
2878호 2025. 7. 13  노년기의 은총 윤경일 아오스딩 
2877호 2025. 7. 6  그대들은 내 미래요, 내 희망입니다. 이나영 베네딕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