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17호 2015.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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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성경을 한 번 다 읽어본 예비 신자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의 존재가 무시무시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이민족의 여자와 아이까지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순호 신부 / 주례성당 주임 albkw93@hotmail.com
어느 신부님이 20년 전 신학생일 때 적었던 글을 읽고 그 글의 유치함에 몸이 오그라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 적은 자신의 일기장을 읽어 볼 때 아마 같은 경험을 할 것입니다. 나의 삶에서 5세의 나와 30세의 나 사이에 성장이 일어났기에 수준의 차이가 납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역사 안에 인류가 성장과 완성을 이루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기록한 책입니다. 당연히‘5세의’인류에게 대학교 수준의 윤리 철학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 시대와 그 수준에 맞게 하느님은 자신을, 자신의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구약의 무시무시한 하느님의 모습은 이제 막 걸음마를 몇 발 디딘 인류 속에 진리의 씨앗을 보호하며 키우기 위한 하느님의 노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울러 세상 창조 이래에 인류에 뿌려진 하느님의 진리의 씨앗은 구약 시대를 지나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꽃을 피운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구약(옛 계약)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신약(새 계약) 성경을 통해,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수를 미워하라는 구약의 불완전한 계명을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 안에 완성하십니다. 그렇다고 구약 성경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일기를 적은 유치원생인 내가 없다면 논문을 쓰는 30대인 나도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