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00호 2014.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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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장재봉 신부 |
제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도무지 응해주지를 않습니다. 대화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장재봉 신부 / 선교사목국장 gajbong@hanmail.net
전에 있었던 본당이 대학 근처에 자리한 덕에 젊은이의 문화를 곁눈질할 기회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더러 생경한 그들의 모습에 놀라는 저를 느낄 때 스스로‘구세대’임을 자각하곤 했지요. 솔직히 자매님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됩니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고 어디로 튈지 조마조마한 그네들의 행동방식에 속을 끓이는 상황이 백번 헤아려집니다. 그럼에도 저는‘우리 어릴 적’에도 어른들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채근만 듣던 우리만의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뭐가 되려고 그 꼴이냐?”고 꾸중 듣기 일쑤였고“말세”라는 힐책까지 따랐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젊은 날의 추억들 말입니다.^^ 내친김에 수천 년 전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도 당시 젊은이들의 행태를 마뜩찮아하는 염려로 그득하다는 점에 주목해도 좋겠습니다. 대화는 신뢰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때문에 상대의 말을 먼저 긍정적으로‘들어주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자매님이 원하는 대화가 혹‘부모의 뜻’을 강요하여 자녀의 동의를 받고 항복을 얻는 것으로 오인하는 듯하여 염려됩니다. 지금 아드님도 지난 날, 우리들처럼 간절히 부모님과의 대화를 갈망할 것입니다. 부모님의 일방적 요구가 아닌 자기의 꿈을 이해받고 싶을 것입니다. 그 꿈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일이 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