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033호 2010.01.24 
글쓴이 석찬귀 신부 

중용의 길을 가신 스승님!(루카 4, 14∼21)

석찬귀 스테파노 신부(범일성당 주임)

저는 응접실에 늘 추가 달린 시계를 걸어두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추는 한편으론 좌우로 얼마만큼 움직이지만 결코 지나침이 없이 늘 중심을 한 곳에 두고 움직이게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고착된 중심만을 고집해서 양쪽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루카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묶인 이들에겐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이들에겐 보게 하고, 억눌린 이들에게는 자유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 시대의 유다교 지도층들은 당시 더러운 사람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죄인들을 없애버림으로써 그네들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만 잘 살려는 경향이 아주 강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은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만 사랑하던 전통을 보완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마태 5, 44). 예수께서 이렇게 사신 이유는 그 분의 하느님은 강한 이들만 아니라 약한 이들도 골고루 햇볕을 내려주시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마태 5, 45). 그런데도 우리 문화는 도처에서 끼리끼리만 만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웅을 추앙한다고 내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고 미인을 우상화한다고 내가 미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복음은 영웅이나 미인만 숭상하고 앉았을 것이 아니라 늘 세상의 뒷전으로 밀려난 사람도 섬겨서 균형을 잡으라고 합니다.

최근엔 가난한 달동네에서 그곳의 아이들과 살아 온 이야기가 담긴 ‘산동네 공부방’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알 듯 말 듯 한 지식이 아니라 별이 빛나는 밤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피땀을 쏟아놓은 이야기도 박수만 치고 앉은 채 내가 해야 할 일을 도피해버리면 균형감각을 잃게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상살이에는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좋지만 삶의 보람에서 오는 재미나 즐거움도 있어야 균형 있게 산다고 봅니다. 왜냐면 이 귀한 일생을 남의 흉내나 내고 하품이나 하다가 속절없이 시들어가다가 죽어갈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왕자가 수많은 장미꽃이 피어있는 꽃밭에서 자기가 두고 온 장미꽃을 더 귀하게 여긴 이유는 왕자 자신이 그 꽃에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자가 ‘장미꽃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라고 한 대목을 기억하면서 내 삶을 위해 더 고민하고 진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비틀거리며 살아야겠다 싶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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