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023호 2009.11.26 
글쓴이 오남주 신부 

11월 위령성월도 다 지나갑니다. 때맞추어 찾아온 초겨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온 자신들의 삶의 궤적을 뒤돌아보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토록 하는 성찰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위령성월의 근본 지향은 연옥 영혼들의 귀천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위령성월이 갖고 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옛 로마인들의 경구를 빌려 표현한다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한 마디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코헬렛 12장 7절에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무한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시공(時空)안에 태어난 인간은 시공 속에 살면서 시공의 제한을 받다가 시공을 떠나게 마련입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묵시 1, 8) 어떠한 피조물도 자신의 유한성을 벗어날 수 없다면, 유한성을 무한성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결자해지라고, 피조물을 지으신 창조주 말고는 어떤 무엇도 결자해지의 능력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치 환시를 보는 듯한 장면을 통해 종말론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내용 첫 번째 순서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와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간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버지의 뜻과 나라를 구하기보다는 물신사상으로 상징되어 세속의 가치를 우선 구하고자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의 모든 가치와 목적은 무한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닌 유한한 가치에 불과한 세상 가치에서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벨탑 얘기가 하나의 옛 설화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중인 실제 상황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신앙은 이와 같은 가치의 혼돈 속에서 정도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삶 자체입니다.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물신 숭배 사상이 세상을 구원할 수 없을뿐더러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나리아 성령 안에서 누리를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현세에 살면서도 궁극적인 행복의 가치를 현세에 두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에 두면서 살아갈 때 그 안에 참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종말론적인 신앙의 삶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님 어서 오소서(마라나 타!, 1코린토 1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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