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맛보기

가톨릭부산 2015.10.13 06:13 조회 수 : 26

호수 2014호 2009.10.01 
글쓴이 김영곤 신부 

오늘은 한가위. 추석 명절. 생각만 해도 배부른 느낌. 말만해도 넉넉한 느낌. 달만 쳐다보아도 풍성한 느낌. 동양 미인의 전형적인 얼굴, 보름달.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바로 풍요로움에 있다. 나누고, 베푸는데 있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적어도, 너에게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 두둥실 떠 있는 보름달 때문이다.

차례를 격식에 맞추어 준비하고 지낸다. 마음을 추스리고 조상들의 음덕에 감사드린다. 깊은 예를 바치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조상들을 섬김은 우리들의 오랜 전통이다. 윗대 어른들에 대한 공경과 더불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가까운 친척과 형제들은 어떤가? 좋은 기분에서 만나 좋은 기분으로 헤어져야 하는데, 왠지…. 석연찮음에 우리들의 마음의 실타래가 꼬여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만큼 너에게 해주어야 함’을 잘 알건만 내가 바라는 만큼 네가 나에게 해주지 않아 유감이 많다고 하필 우리는 오늘 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과 요구 사항이 많은 만큼, 그만큼 섭섭함도 크단다.

풍성한 마음에 나누어 줄 것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되던 내가, 오히려 받지 못함에 섭섭해 하고 있다. 조상에 대한 섬김은 온갖 예우를 다하면서, 정작 형제들에 대한 섬김은 오히려 받으려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둥그런 보름달이 왜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고, 동양미인의 전형이 되고, 부자집 맏며느리의 얼굴 모습이라고 하는가? 착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아름다운 것이 착한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을까?

보름달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착하게 만들고, 착해진 내 마음이 나눔과 베풂과 섬김이라는 사랑 실천에 앞장선다면, 이 사회는 분명 보름달의 빛을 받아 오늘 저녁이 환하듯이 밝은 사회가 될 것이고, 내 작은 사랑의 나눔이 이웃들의 마음을 훈훈하고 환하게 할 수 있으리라. 자! 동무들아! 손에 손잡고 ‘강강술래’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피자꾸나. 우리 곁에 따스한 사랑을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송편’을 빚자꾸나.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널뛰기’를 하고, 함께 목표를 맞추기 위한 ‘투호’를 하자꾸나. 마음 모아 힘 모아 영치기 영차 ‘줄다리기’로 우리의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임을 나타내 보자꾸나.

오늘은, 사람들아! 둥근 내 얼굴과 함께 입술이 양 귓볼에 닿도록 벙글 벙글 벙그레 웃으며 ‘한사람의 행복이 만인의 행복이 되고, 만인의 행복이 한 사람의 행복’이 되는 그런 공동체를 꿈꾸어 보자. 그래서 오늘이 우리에겐 천국의 첫 날이 되게 하자. 나눔이 넉넉하고, 베풂이 풍성하고, 섬김이 공손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 우리 모두 격이 있는 사람으로 품위를 갖추도록 하자.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file 최정훈 신부 
2896호 2025. 11. 2  우리의 영광은 자비에 달려있습니다 file 염철호 신부 
2895호 2025. 10. 26  분심 좀 들면 어떤가요. file 최병권 신부 
2894호 2025. 10. 19  전교, 복음의 사랑으로 file 김종남 신부 
2893호 2025. 10. 12  우리가 주님을 만날 차례 file 한종민 신부 
2892호 2025. 10. 6  복음의 보름달 file 김기영 신부 
2891호 2025. 10. 5  느그 묵주 가져왔나? file 김기영 신부 
2890호 2025. 9. 28  대문 앞의 라자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file 정창식 신부 
2889호 2025. 9. 21  신적 생명에 참여하는 삶 file 조성문 신부 
2888호 2025. 9. 14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 file 박재범 신부 
2887호 2025. 9. 7  더 크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file 이재원 신부 
2886호 2025. 8. 31  행복을 선택하는 삶 file 박호준 신부 
2885호 2025. 8. 24  ‘좁은 문’ file 이영훈 신부 
2884호 2025. 8. 17  사랑의 불, 진리의 불 file 이영창 신부 
2883호 2025. 8. 15  마리아의 노래-신앙인의 노래! 김대성 신부 
2882호 2025. 8. 10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깨어있는 행복! file 김대성 신부 
2881호 2025. 8. 3  “만족하십시오.” file 이재혁 신부 
2880호 2025. 7. 27  “노인(老人)=성인(聖人)” file 정호 신부 
2879호 2025. 7. 20  마르타+마리아=참으로 좋은 몫 file 이균태 신부 
2878호 2025. 7. 13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file 계만수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