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73호 2018.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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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주영 첼레스티노 |
말하는 것의 차이
박주영 첼레스티노 / 남천성당, 언론인 park21@chosun.com
얼마 전 집에서 TV로 영화,‘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개봉된 지 좀 된 영화였지만 애 엄마와 부담 없이 볼만한 걸 찾다가 이 작품으로 낙착됐습니다. 거의 400년 전 병자호란을 소재로 하는 영화니 역사도 배울 겸, 예전에 배운 국사 지식도 새롭게 할 겸 해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TV 채널 관련, 집안 권력 서열상 하위급에 속하는 저의 의견이 반영된 게 고맙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조선시대 암군(暗君) 중 상위로 꼽히는 인조와 요즘 교육부 장관쯤인 예조판서 김상헌, 현재 행자부 장관쯤 되는 이조판서 최명길 등 3명이 빚어내는 대립각, 갈등을 주된 스토리 라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 역사 지식으로 보면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입니다. 단순한 구도지요. 그러나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그걸 좀 더 풀어쓰면 다른 측면, 요소들이 많습니다. 왕조와 권력의 보존, 죽음에 대한 개인적 두려움, 성리학 이념을 지키고자 하는 지조, 엄혹한 현실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인고의 지혜….
영화는 왕이지만 어쩔 수 없는 개인적 두려움에 떠는 인조의 모습,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두 선비의 고뇌 등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관객으로서 제가 읽은 맥락도 있었습니다.
국제 정세에 어둡고 자신들만의 공자왈 맹자왈에 빠져 있는 무능한 정부, 단지 드러난 원칙·의리만 있을 뿐 실제 문제를 해결할 전략·방책은 전혀 없는 국가의 외교력, 왕과 사대부의 명분과 이념만 있지 민중의 현실과 실리는 외면하는 완고함 등이 빚어낸 그림자들 말입니다.
영화는 청나라에 항복하고 김상헌이 자결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김상헌의 자결은 문학적 허구입니다. 역사적 사실에선 김상헌이 죽지 않고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갑니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 예술과 역사가 말하는 것이 다른 셈입니다. 언론이라면 이걸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종교가 얘기하는 방식은 예술, 역사, 언론과 다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선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마르 4, 1~12)
저는 길바닥이나 돌밭쯤 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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