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8. 月曜日. 주님 세례 축일(대리구미사)
① 이사 42,1~4.6~7 또는 사도 10,34~38 ㉥ 마르 1,7~11
주님의 세례와 우리의 세례
!!, 오늘 주님세례축일미사에 오신 여러분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올한해도 성모님께 봉헌하는 미사를 드리도록 합시다. 주님의 세례는 주님께서는 30년동안 숨어계시던 나자렛 사생활을 마감하시고, 구세주로서 공생활을 시작하신다는 신호탄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세례를 묵주기도 빛의 신비로 묵상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는 사건을 전하는 복음은 놀라운 신비로 가득차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세례받을 때,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삼위일체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께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무렵에 예수님께서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들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삼위일체하느님이 나타나신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이 일이 일어납니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한몸을 이루면서, 예수님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먼저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하느님생명의 은총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세례받기 전에도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세상의 부모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아버지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치 고아처럼 살아왔던 것입니다. 고아처럼 살아왔기에, 고통과 죽음 앞에서 무서워 떨며, 온갖 근심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의 은총과 믿음의 은총을 받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그 영원하신 사랑의 아버지를 알게 되고,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움과 평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 아버지를 가장 단순하게, 가장 깊이 가르쳐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단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Abba’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르쳐주신 믿음의 핵심입니다. 구약성서도, 유교도, 불교도, 마호멧드교도,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하느님을 가리켜 압바라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느님이 우리의 압바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압바’는 아람어로 철부지 아기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압바와 아기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녀이며,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자녀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압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주의 창조자이시요 우주의 왕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어보고 있는 사랑의 압바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참으로 압바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께 의탁하고 의지하고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근심걱정을 그분께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를 준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깊이 신뢰하신 샤를르 후꼬 신부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을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은 제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신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가 부모자식 사이라면, 예수님과의 관계는 한 몸의 관계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포도나무와 그 가지라고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이 복음말씀 그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의 몸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창조되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일치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적이며, 생명이 됩니다. 요한묵시록 22,9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유합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성녀 소화데레사는 주님과 바로 이 일치를 이룬 영혼이었습니다. 성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억하소서. 예수님, 생명의 말씀이시여. 당신은 나를 위해,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음을! 나도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도 당신을 위해 살고 또 죽고 싶습니다.(PN24) 나의 유일한 사랑이시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을 사랑하도록 나에게 천 개의 마음을 주소서! 그러나 아직도 너무 적습니다. 지극히 아름다우신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도록 당신의 거룩한 마음 자체를 제게 주십시오!(PN24)
마지막으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과의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쏟아주시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몸을 부활시켜 주실 것이라고 로마8,11이 말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과 한 몸이 되게 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 우리에게 부활의 새생명을 불어넣어주시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쏟아주시는 성화자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 가난한이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 주소서... 허물은 씻어주고, 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 고치소서. 굳은 맘 풀어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 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오늘 주님 세례 축일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생명과 축복이 우리 위에 충만히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