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 현장에서

가톨릭부산 2015.10.12 15:53 조회 수 : 51

호수 2186호 2012.11.4 
글쓴이 최영홍 요셉 

무료급식 현장에서

최영홍(요셉) / 남산성당 사회복지분과장

지난 늦봄, 무료급식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급식은 11시 30분에 시작된다. 하루하루가 무료한 대부분 어르신은 언제나 한발 앞서 나오신다. 하지만 무료함은 집이나 급식 현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 방법은 노래를 부르시게 해서 추억을 되새겨드리고자 함이었다. 뚜껑을 연 결과 예상보다 훨씬 호응도가 높았다. 음률에 맞춰 덩실덩실 춤사위를 풀어놓기도 하셨다. 즐거운 표정은 숨길 수가 없나 보다. 그분들의 미소는 자신들의 주름을 말끔하게 감추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어르신들에게 일주일이 얼마나 길고 지루했을까? 지난주에 이은 흥겨운 노래판이 그것을 대변했다. 그런데 돌연 인근 아파트에서 연락이 왔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노래를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넓은 공터에서 악기를 연주한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우렁찰 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당장 그만둬야 했다. 현장은 다시 침묵의 공간이 되었다. 아니, 노래를 부르기 전보다 더 깊은 침묵에 빠져버렸다. 어르신들의 노래를 막는 것이 ‘노인이 모여 있는 곳은 부동산 시세가 떨어진다.’는 낭설과 일치되는 것 같아 못내 씁쓸했다. 30분간 누릴 즐거움을 잃어버린 상실감은 컸다. 그분들의 한숨 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순간이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너희가 늙어본 적이 있더냐? 우리는 젊어 봤다.” 의미심장한 이 문구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사지마저 오그라든, 어느 봄날의 비애다.

◆ 무료급식 : 매주 화요일 전포동 돌산공원 11:30부터 식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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