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66호 2017.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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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탁은수 베드로 |
사랑한다, 너를
탁은수 베드로 / 광안성당, 부산MBC 보도국 부장 fogtak@naver.com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가며 배우고 성장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모도 자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책가방에 짓눌려 학교 가는 자녀의 뒷모습, 짧은 머리로 입대하는 아들의 뒷모습, 지친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가는 아들, 딸의 뒷모습을 보며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때론 눈물도 훔쳐가며 부모가 됩니다. 가슴이 먹먹한 일에도 말보다 묵묵히 뒷자리를 지키는 게 더 큰 격려라는 걸 알게 되며 부모도 성숙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품안을 떠나 어른이 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조금씩 부모도 부모가 되어 갑니다.
그럼 주님은 성전을 떠나는 우리의 뒷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자녀들의 작은 신음에도 아파하시는 주님이 거친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시는 그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가슴 메어질 듯 그 음성 나를 부르시네 /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할 때도 /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중)하는 성가가 떠오릅니다. 성전을 돌아 나올 때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데도 십자가의 예수님은 고통 속에 묵묵히 저희 뒷모습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기다림 끝에 우리는 예수님 생일을 맞습니다. 설레고 기쁜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만나기 위한 예수님의 기다림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은 누울 곳 없고 냄새나는 마구간으로 오시어 저희를 기다리십니다. 갓 난 남자아이들이 모두 살해당하는 죽음의 위협을 넘어, 마침내는 자신의 죽음마저도 감내해야 하는 희생을 안고 저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설렐 수 있는 건 이렇게 간절한 예수님의 더 큰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생일날은 말구유에서 저희를 기다리시지만 매일 매일은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을 겁니다. 떠나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죽음을 감내하는 고통으로 저희를 기다리셨을 겁니다. 기쁜 예수님 생일인데 그 기다림의 간절함을 생각하면 왜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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