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1997호 2009.06.14 
글쓴이 박기흠 신부 

공생활 중에 행하신 주님의 성찬 예식은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 나누는 실재적인 잔치였다. 당신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들과의 여러 식사들, 그리고 오늘 복음처럼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기념하던 만찬은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현실화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의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말씀으로 다시 육화되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가운데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로 거듭 성장한다(사도 2,42∼47; 4,32∼35). 이것이 우리 교회의 전례의 핵심이며 영성이다.

따라서 교회의 자기 정체성과 정통성은 이 말씀과 성체의 일치, 말씀과 성체를 통한 신자들과 일치.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대축일의 가장 큰 의미도 바로 이 일치됨에 있다. 분명 말씀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은 주님을 알아보는 장소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행하는 성찬 역시 당신의 희생에 베풀어진 사랑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에도, 다가올 천상 잔치에서도 약속하신 구원을 기다리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들의 요구와 상황에 관심에 대한 공동체의 사랑이 결핍된다면 주님 성찬의 깊은 뜻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하므로 성체와 성혈의 실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가 몸소 보였던 가난한 형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삶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성찬은 빈말이요, 무의미한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마태 25, 31∼46)

역사적으로 성체성사와 신심 그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었다면 성체성사와 수많은 신심이 공동체적 사랑에 힘을 주는 성찬례에 대한 신앙에로 지향되지 못한 태도가 문제가 있었다. 기계적이고 자동화된 성체성사 거행, 습관적이리만치 개인화된 성체신심이 우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혼란케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비란 현실의 자각이다."라고… 오늘도 사제가 성찬 거행 중에 "신앙의 신비여…"라는 외침을 듣는다면 ,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시고 희생되신 우리 주님 안에서 "~굳세게 믿나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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