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을 제 때에 주는 것도 아니고, 거름을 적당히 주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우선적인 조건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무로부터 수분도 공급받고 영양분도 얻어낼 수 있다. 그게 기본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다 부차적인 조건들이다.
그런데 우린 그걸 쉽사리 잊어버린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나서 나머지 조건들만 생각한다. 온도를 생각하고, 수분을 생각하고, 영양분을 생각한다. 그게 열매를 맺기 위한 더 우선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당연하다고 여긴 그 첫 번째 조건을 뇌리에서 지워버린다. 그러다가 가지에 붙어있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가지들을 보면서, 그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음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그제야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우친다.
그 당연하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을 오늘 복음에서는 포도나무의 그림으로 쉽게 풀어주신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듯 가르쳐 주신다. 그 가르침에 진리가 담겨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 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것이다. 맞다. 신앙은 본디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느님께 여는 수동적 행위이며, 그 분을 붙잡고, 그 분께 매달리며, 그 분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행위이다. 그렇다고 이 머무름이 그저 수동적이지는 않다. 가지는 나무에 그저 붙어있지만 않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물을 빨아들이도록 뿌리를 재촉한다. 그게 나무와 가지의 관계다.
가지의 이 행위는 나무에 붙어 있다는 면에서는 그저 수동적인 행위이지만, 그 내용은 엄청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행위이다. 머물러 있되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음은 단순히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주고받음의 유기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분이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머무름이다. 그렇게 머물러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열매에 대해서는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 잘 나와 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 21∼22). 이런 열매들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