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74호 2016.03.20 
글쓴이 염철호 신부 

약은 집사 이야기(루카 16, 1~8)에서 주인의 재물을 마음대로 탕감해준 집사를 주인이 도리어 칭찬하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현대인들에게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모든 재물이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잠시 맡고 있는 집사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좀 쉬워집니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재물은 윤리적으로 뛰어났던 바리사이들마저 호릴 정도로(루카 16, 14 참조) 우리를 불의한 길로 이끌 소지가 큽니다.(루카 16, 9 참조) 그래서 복음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루카 16, 13 참조) 이런 측면에서 루카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잘라 말합니다.(루카 6, 20 참조) 그러면 재물을 많이 가진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음서는 재물을 섬기지 말고 재물을 영리하게 이용해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하여 그들을 친구로 삼으라고 가르칩니다.(루카 16, 9 참조) 그러면 그들이 영원한 거처에서 그를 맞아들여 줄 것입니다. 복음서의 약은 집사는 이를 무시하고 재산을 함부로 하다가 집사 자리에서도 쫓겨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집사는 즉시 태도를 바꾸어 영리하게 행동합니다. 주인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며 주인은 집사가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합니다. 주인의 재물을 낭비하기를 멈추고, 본래 재물을 맡긴 이유에 따라 재물을 영원한 거처에 들어가기 위한 친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재물은 다양합니다. 지위와 권력, 재능, 은사 등도 자칫 잘못하면 우리를 불의하게 만듭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이용해 친구를 사귀는 것만이 영원한 거처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 이것이 약은 집사 이야기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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