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73호 2016.03.13 
글쓴이 권순호 신부 

매월 한 번 봉사 활동을 하러 근처 요양병원에 갑니다. 하지만, 노인들을 위해 봉사할 때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사랑의 감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본 모습을 숨기고, 가식적으로 그들을 위하는 척할 수도 없고, 그럴 바엔 봉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 / 주례성당 주임 albkw93@hotmail.com

  결혼 생활에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속에 좋아함의 감정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허니문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길어봐야 1년 짧게는 3개월입니다. 그런데 허니문 시절이 끝났다고 사랑이 끝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신혼 초기에는 본능의 단계의, 즉‘저절로’사랑을 했다면, 이제 의지의 단계의, 즉‘스스로’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싫어하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성숙도를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미성숙한 단계는 그냥 자신의 기호에 따라 감정도 드러내고, 행동도 해버리는 것이지요. 어쩌면 가장 솔직하지만 가장 미성숙한 방법이지요. 허니문의 열정이 식자 바로 갈라서는 부부와도 같지요. 그 다음 단계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oppression)하는 것입니다. 마치 서로에 대한 본능적인 열정이 없어졌지만, 있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마지막 가장 성숙한 단계로 억제(suppression)가 있습니다. 내 속에 싫어한다는 감정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바로 분출하여 행동하지도 않고, 그 감정을 참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십자가 길에 앞서 겟세마니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어진 잔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높은 단계의 사랑을 위해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는 좋아서만 행동하는‘저절로’사랑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스스로’사랑을 배우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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