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73호 2016.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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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상효 신부 |
힘의 방향 - “끌고 와서”(요한 8, 3)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만일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벌인 단죄 놀음이 성공했다면 이들도 오찬 회동을 했을까? 게걸스레 점심을 해치우면서 자신들의 무용담을 서로 나누었을까? 고작 힘없는 여인 하나를 돌로 쳐 죽여 놓고 잔뜩 고무된 자존감으로 행복해했을까? 율법을 수호했고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만들었다고 서로를 부추겨 주면서 하느님을 찬양하였을까?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힘없는 죄인 하나를 해치우고 나서. 만일 이들의 단죄가 성공했다면 유대사회가 더 순결해지고 하느님은 더 거룩해졌을까? 그들의 힘은 왜 늘 이런 방향으로 행사될까?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루카 13, 1 참조)을 놓고 이 순결함의 수호자들이 빌라도를 향하여 돌멩이를 들었다는 보도를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헤로데와 헤로디아 사이의 불미스러운 가정사(마태 14, 3 참조)를 놓고 이 율법의 수호자들이 세례자 요한이 했던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다는 보도도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여력이 없어 율법을 배울 수도 없고, 율법에게 삶의 중요한 위치를 내줄 수도 없어 늘 죄인이 되어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그 시대의 큰 힘들에 대하여 이 힘자랑하기 좋아하는 분들이 대신 나서주었다는 정황도 찾기 힘들다. 힘은 늘 아래쪽을 향하여 행사되고 자비는 늘 위쪽을 향하여 발휘된다.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여성, 월급쟁이, 청년실업자, 택배아저씨, 식당 홀 서빙 아줌마, 백화점 점원, 동네마트 계산원, 치킨 집 아저씨...
이들을 몰아세운다고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정의(正義)가 새롭게 정의(定義)되는 것도 아니고, 내 순결함이 고양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초라해진다.
다음 달 국민이 힘을 모아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국가적 행사가 치러진다. 그날까지 평소에 힘을 어느 방향으로 사용하는지 잘 살펴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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