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8. 사순 제4주간 화요일(대리구미사)
① 에제 47,1-9.12 ㉥ 요한 5,1-16.
기도의 근본자세 – 청원기도(1)
!!, 오늘 미사독서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제 1독서 에제47장의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2장은 주님의 몸이 바로 참된 성전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이 성전인 이유는 주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의 몸을 성체로 모시는 우리도 성령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지난 기도에 묵상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기도의 표현과 내용으로 보면, 기도는 찬미와 청원, 전구, 감사, 찬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644항 이하) 오늘은 모든 기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청원기도에 대해서 묵상하도록 합니다.
지난 주에,, 기도는 바로 번제와 같음을 묵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책이나 강의로써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써 비로소 기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올바로 배우기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기도의 교과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어떻게 기도했고, 또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가장 올바른 신앙체험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기도했습니까?
제일 먼저, 구약 판관기를 “울부짖다.”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티나에 정착을 하게 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팔레스티나 사람들의 풍습을 따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주변 적국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쳐들어옵니다.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죽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들이 죽게 되었음을 깨닫고, 하느님께 살려 달라고 울부짖게 됩니다. 그러면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어 힘센 판관을 보내주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 이기고 평화가 되찾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 죄를 지으면 적국이 또 쳐들어 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울부짖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니다. 이런 얘기가 판관기에 마치 후렴처럼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런 식의 얘기가 지루할 정도로 판에 박은 듯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교육하는 하느님의 교육방법인 동시에,, 이스라엘이 체험한 기도의 은총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짓고 죽게 되었을 때, 하느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울부짖었다는 것은 하느님께 매달렸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매달렸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면서 하느님을 멀리 떠나 있다가 위험이 닥치면 하느님께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즉 인자하신 하느님께 돌아가 하느님께 매달려 울고불고 하면서,, 회개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시면, 아무도 자기를 그 고통과 시련에서 살려줄 사람도, 신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우리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원기도는 예수님만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가장 적나라하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신앙행위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께 매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애는 아무에게나 매달려서 밥달라, 장난감 사달라 조르지 않습니다. 어린애는 자기엄마에게만 매달립니다.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가 자기가 필요한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애는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합니다. 의지하기 때문에,, 엄마에게 밥달라, 돈달라, 장난감 사달라,, 아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근본적인 태도는 신약성서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복음을 보면,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청할 때,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를 들면, 마르 10장을 보면, 예리고의 맹인 거지 바르티메오의 얘기가 나옵니다. 이 바르티매오의 얘기도 기도가 주님께 울부짖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예리고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길가에서 동냥을 하고 있던 바르티메오가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지나가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요? 사람들이 나자렛사람 예수가 지나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바르티메오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렇게 하도 고함을 지르니까 사람들이 좀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사람들의 꾸지람을 듣고도 바르티메오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끈질긴 고함소리를 듣게 된 주님께서 바르티매오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겉옷을 벗어던져버리고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얼마나 좋고 얼마나 급했으면 겉옷을 벗고 주님께 달려갔겠습니까? 그 바르티매오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주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오직 주님만이 나를 살려주시고 구원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주님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청원기도는 참으로 신앙의 진수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소리를 지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들어주실 때까지 청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기도는 시간적으로 보아 끝까지 지치지 않고 주님께 온 마음으로 매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 풍부히 나와 있는 루카복음을 보면 기도는 상대방이 두손두발 다 들 때까지 끝까지 청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루카11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옆집에 있는 친구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빵 3개를 꾸어달라고 청합니다. 한밤중에 옆집 친구집에 가서 빵을 꾸어달라는 이유는 갑자기 그 한밤중에 여행하던 친구가 찾아왔는데, 그 친구에게 대접할 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옆집친구는 방안에서 대답하기를 일어나서 빵을 내어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거절하는 이유는 지금 다 문을 닫아걸었고, 또 애들과 잠옷바람으로 누워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귀찮아서 빵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집 문밖에 선 사람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서 “빵 좀 도!!”하고 졸라댑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귀찮습니까? 빵을 주지 않으면 이 사람이 가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서 졸라대니까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주 명확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줄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5~8)
이렇게 주님께 매달리고 울부짖는 청원기도는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기도입니다.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께 내어맡기는 신앙이 청원기도로써 잘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청원기도는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깊은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진심으로 바치는 청원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살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존재 자체가, 우리 삶 자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기가 절대 어머니를 떠나지 않으려는 것처럼, 우리 삶 전체가 주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전에 말씀드린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라는 믿음의 관계가 주님과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주님의 기도도 모두 청원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처럼 우리의 청원기도가 성숙하게 되기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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