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하늘나라입니까?”

가톨릭부산 2017.09.20 10:30 조회 수 : 174

호수 2453호 2017.09.24 
글쓴이 이장환 신부 

“이게 하늘나라입니까?”

이장환 신부 / 부산교구

  지난겨울, 많은 국민들이 수많은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혹시 오늘 복음을 들으신 분들 중에,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이들과 겨우 한 시간만 일한 이들에게 같은 임금을 지불하는, 게다가 내가 가진 것을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막말을 일삼는 밭 임자의 언행에‘이게 하늘나라냐?’하고 불평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늘나라 비유의 주인공인 밭 임자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찾아 나섭니다. 아침 일찍 만난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하고 일을 줍니다. 자비로운 밭 임자는 그 이후에도 돌아다니다가 선택받지 못한 일꾼들을 발견하고는 정당한 삯을 주기로 하고 일을 줍니다.
  문제는 일을 마치고 품삯을 내줄 때 일어납니다. 아침부터 일한 이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고 늦게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이들도 정당한 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아침부터 고생한 일꾼들은 정당한 삯 이상의 대우를 기대했는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립니다. 그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은 박한 대우를 받았고, 다른 사람은 후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 또는 정당한 삯이란 천국을 의미합니다. 천국을 선물 받고 그것이 박한 대우라니요! 시기, 질투에 눈먼 그들은 천국 이상의 것,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나의 노동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밭 임자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이든 오후 다섯 시든, 밭 임자가 일을 주었기 때문에 포도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즉 하늘나라는 내가 기도나 희생과 봉사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의 신앙생활이 올발랐음을 인정해주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자격은 내가 갖추어야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늘나라에서‘너는 왜 있냐?’는 물음과‘그가 왜 없을까?’라는 물음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잣대로 하는 이런 질문은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 세상의 기준과는 달라서 꼴찌가 첫째가 될 수도 있는 나라, 인간의 심보와는 다른 후한 주인을 만날 수 있는 나라, 이게 하늘나라입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88호 2025. 9. 14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 file 박재범 신부 
2887호 2025. 9. 7  더 크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file 이재원 신부 
2886호 2025. 8. 31  행복을 선택하는 삶 file 박호준 신부 
2885호 2025. 8. 24  ‘좁은 문’ file 이영훈 신부 
2884호 2025. 8. 17  사랑의 불, 진리의 불 file 이영창 신부 
2883호 2025. 8. 15  마리아의 노래-신앙인의 노래! 김대성 신부 
2882호 2025. 8. 10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깨어있는 행복! file 김대성 신부 
2881호 2025. 8. 3  “만족하십시오.” file 이재혁 신부 
2880호 2025. 7. 27  “노인(老人)=성인(聖人)” file 정호 신부 
2879호 2025. 7. 20  마르타+마리아=참으로 좋은 몫 file 이균태 신부 
2878호 2025. 7. 13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file 계만수 신부 
2877호 2025. 7. 6  말씀 전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 file 정상천 신부 
2876호 2025. 6. 29  흔들린 고백 file 천경훈 신부 
2875호 2025. 6. 22  새 계약 file 신문갑 신부 
2874호 2025. 6. 15  하느님의 얼굴 file 조영만 신부 
2873호 2025. 6. 8  보호자시여, 저희의 닫힌 문을 열어주소서! file 권동국 신부 
2872호 2025. 6. 1.  승천하신 예수님, 저희도 하늘로 올려 주소서 file 이상일 신부 
2871호 2025. 5. 25.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file 맹진학 신부 
2870호 2025. 5. 18.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file 권동성 신부 
2869호 2025. 5. 11.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신 하느님! file 박규환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