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구장 강론

2016. 2. 23.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대리구미사)

① 이사 1,10.16-20 ㉥ 마태 23,1-12.

 

      기도의 원칙들(1) - 기도는 번제

 

1977년, 그때 저는 부제였습니다. 그때 어느 교수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마음깊이 새겨졌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서서히 시들어가고 결국 중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후, 사제가 되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하게 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서품받은지 2년이 조금 지난, 1980년 3월, 저는 이태리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그당시 저는 언양 본당신부로 있다가 갑자기 인사명령을 받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떠났기 때문에 이태리말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태리말을 전혀 할 줄 몰랐던 저는 이태리에 도착하자마자 말공부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태리어를 공부하기 위하여 이태리 중부 움브리아 지방에 있는 빼루지아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빼루지아는 산과 언덕위에 세워진 고대 도시로서 양산시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이 역사깊은 고대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하숙할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은 수도원은 프란치스꼬 수도원이었습니다. 그 수도원에서 여장을 풀고 그 다음날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날부터 저는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매일 한국말로 미사를 드리고 강론을 하고 신문과 TV를 보았는데,, 지금은 한국말로 미사도 드릴 수가 없었고, 신문도, TV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묵고 있던 프란치스꼬 수도원은,, 이태리 수사들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과 아주 간단한 대화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와도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저는 하루아침에 영락없이 귀머거리요 벙어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귀머거리에다가 벙어리가 된지 보름쯤 지나니까 하늘이 노래지고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대로 내가 혹시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이 바로 지옥의 고통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옥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통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친교를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홀로 무인도에 끝없이 사는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각자는 서로 만날 수 없는 무인도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지옥입니다. 영원히 고립되어 홀로 고독과 외로움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고통이 지옥의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랑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옥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사랑하지 못 한 것에 대해서 영원히 후회하면서 미워하는 고통만 있는 것입니다.

 

저는 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떤 사람과도 소통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없어도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만일 하느님과 말이 통하지 않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눌 수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과 말을 할 수 없는 고통은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과 말을 할 수 없다면 그 고통은 끝이 없고,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 앞에서 영원히 귀를 막고 말문을 닫아야 하는 고통이 바로 지옥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는 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말못하는 언어의 고통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기도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의 고통을 키우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런 체험을 통하여 참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온갖 희노애락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주님과 친교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신앙생활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음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은총으로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나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아듣고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과 올바른 사랑의 관계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열매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면 기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의 제사를 설명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구약시대에는 여러 가지 제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화목제, 친교제, 속죄제, 이런 여러 가지 제사를 바칠 때, 주로 번제라는 형태로 바칩니다. 이 제사는 동물이나 곡식을 불에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워버림으로써 그 향기로운 연기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물을 태워버림으로써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파괴함으로써 하느님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 때, 점령한 도시의 건물과 사람과 동물을 모두 파괴하고 태워버리는 것을 완전봉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손을 대지 못하게끔 파괴하고 태워버림으로써 그 제물을 온전히 하느님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기도도 이와 같습니다. 기도드릴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주일미사를 드리면 일요일 반나절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면 30분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드리는 시간은 다른 활동하기에도 좋은 시간입니다. 새벽미사나, 새벽기도를 바치는 시간은 운동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주일미사드리는 날은 쉬기에도 좋고 놀러가기에도 좋은 날입니다. 아침묵상기도는 책을 읽거나 운동하기에도 좋은 시간입니다.

 

이렇게 좋은 시간에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 시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그 좋은 시간을 번제물처럼 파괴해서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기 위하여 시간을 번제물로 바치면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근본적인 변화가 우리 삶속에서 일어납니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은 하느님께 흠숭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흠숭과 경배를 통하여 그자신과 삶이 모두 하느님의 것이 됩입니다.

 

기도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서 한시간 두시간을 바치게 되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봉헌되기 시작합니다. 즉 기도드림으로써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것이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은 우리 삶의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어머니가 됩니다. 그래서 주일미사를 봉헌하면, 일주일 전체가 하느님께 봉헌되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몸이 되는 은총과 축복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바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기도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젊은 사제였던 저는 어느날 기도하기 위해 밤늦게 성당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주일이었고 따라서 조용히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밤늦게 성당에 들어간 저는 피곤한 나머지 그만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한참자고 나니 추워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나와 사제관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때 마음이 날아갈 것같이 기쁘고 행복하였습니다. 제가 주님의 것이라는 느낌이 가슴 깊이 왔던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몇일이 아니라 몇 달씩 지속됩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서 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기도한다고 하면서, 몇시간 자고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번제물처럼 하느님께 봉헌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단 기도를 시작하면 비로소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이 원칙은 우리가 인생을 배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수영을 배웁니까? 물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해야만 수영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기도함으로써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강론만 듣고, 또 책만 보고서는 결코 기도를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기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로운 사순절에 이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히 내리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