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55호 2014.01.19 
글쓴이 장재봉 신부 

하느님에 대해 생각중인 수능 끝난 고3입니다.^^ 하느님께서 제 아버지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편하고 제 주인이신 것도 인정하지만, 제가 하느님의 종이라는 게 약간 거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자녀와 종, 두 단어의 이질감이 너무 큽니다.

장재봉 신부 / 활천성당 주임 gajbong@hanmail.net

하느님 생각에 몰두해 있는 ‘고3 친구’의 모습이 참 어여쁩니다. 문득 “친구면 친구지… ‘종’은 또 뭐야?”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인데요. 우리는 틀림없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리 2, 6∼7) 세상의 종이 되셨습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 죄의 종노릇을 하는 비참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친 이는 세례로써 주님의 뜻에 순명하는 ‘종’으로 살 것을 약속합니다. 그분께서 그러하셨듯이 나보다 못하고 약한 이들에게 군림하지 않는 사랑의 종으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로마 6, 16)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종’이라 하는 것은 당신의 노예로 삼겠다는 표현이 아니라, 당신의 은총을 입은 당신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앞서 제가 ‘친구’라고 적은 것을 “신부가 평신도를 어떻게 친구라고 하지?”라며 의아해하지 않은, 바로 그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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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2420호 2017.02.05  미사나 기도 중에 분심이 많이 듭니다. 저는 정말 집중해서 기도하고 싶은데, 자꾸만 쓸데없는 생각들이 들어서 속상합니다. 어떤 때는 죄책감마저 들어 고해성사를 본 적도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여러 가지 분심에 늘 시달립니다. 홍성민 신부  303
253 2419호 2017.01.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말하나요? 불의는 당연히 발고(發告)하고 벌을 받는 것이 맞는데 용서를 해야 한다니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아닌지요? 염철호 신부  205
252 2418호 2017.01.22  우리는 종교를 선택할 때도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기를 바라며, 자신의 자식이 잘 되기를, 부모님이 건강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예수님의 삶을 따르기 위해서 이웃에 봉사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종교를 가지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성공과 소망을 위해서 종교를 가지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요? 권순호 신부  491
251 2417호 2017.01.15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니 그냥 믿으라고 합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 아래서만 신앙이 가능한 것인가요? 홍경완 신부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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