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53호 2014.01.05 
글쓴이 권순호 신부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신앙생활에도 많은 편리함을 줍니다. 요즘처럼 바쁜 사회에서 굳이 성당에 가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고해성사를 받거나, 텔레비전으로도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참 좋을 듯합니다.

권순호 신부 / 주례성당 주임 albkw93@hotmail.com

우리는 세상의 많은 사건들을 스마트폰, TV, 인터넷 등의 최첨단 통신 수단을 통해 직접 현장에 가 있는 듯이 안방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보게 되었습니다. 현대 문화는 이렇게 보는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서서히 방관자가 되고, 화면으로 전해지는 사건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은 ‘미사를 참여 한다’보다는 ‘미사를 본다’라는 표현을 많이 써왔습니다. 하지만 성사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우리들 가운데 보내시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육화의 신비는 하느님의 인간의 삶에의 진정한 참여, 우리의 어려움에 대한 책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이런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성사’를 통해 우리가 보고 만지고 맛보게 하고,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또한 구원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기를 배려하셨습니다. 고향의 어머니가 하루 종일 음식을 마련하고 자녀들을 초대하였는데, 자녀들이 자신의 편리만을 생각하여 찾아오지도 않고 스마트폰 영상 통화로만 끝낸다면 어머니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먼데서 그저 방관하지 말고, 참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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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53호 2014.01.05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신앙생활에도 많은 편리함을 줍니다. 요즘처럼 바쁜 사회에서 굳이 성당에 가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고해성사를 받거나, 텔레비전으로도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참 좋을 듯합니다. 권순호 신부  106
95 2251호 2013.12.29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근데 막상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자로서의 올바른 쉼이란 무엇일까요? 홍경완 신부  111
94 2249호 2013.12.22  육신의 부활을 믿기에 화장을 금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유지에 따라서 화장을 선택한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장재봉 신부  162
93 2248호 2013.12.15  구약에 묘사된 하느님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곤 합니다. 백성들에게 심판의 벌을 내리시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는 다른 민족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대하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왜 구약에서의 하느님 모습은 그러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홍성민 신부  136
92 2247호 2013.12.08  요즘에 남편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많이 힘듭니다. 남편 이름으로 미사를 봉헌하거나 남편에게 팔찌 묵주를 차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권순호 신부  158
91 2246호 2013.12.01  부부 사이가 금이 갔습니다. 그런데 배우자는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니 받아들이자고 합니다. 반감이 생깁니다. 어디까지가 과연 하느님의 뜻인가요? 홍경완 신부  250
90 2245호 2013.11.24  세례 성사 때에 세례명을 정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호성인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장재봉 신부  153
89 2244호 2013.11.17  평일 미사에 자주 참여하는 편이지만,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미사예물은 봉헌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기도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지향으로 미사 예물을 봉헌한 사람과 예물을 봉헌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지향을 기도한 사람과는 미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은총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합니다. 홍성민 신부  111
88 2243호 2013.11.10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간식이 무엇이 나올까만 관심이 있지, 딱딱한 교리나 미사 참례에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신앙 교육을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  339
87 2242호 2013.11.03  아는 분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것인지 새삼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134
86 2241호 2013.10.27  방송에서 어느 스님이 선과 악은 상대적이라고 설명하던데요. 이순신 장군의 위장전술이 우리에게는 선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악이라는 예를 들더군요. 그런 어이없는 주장에 관하여 꼭 집어서 반박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장재봉 신부  159
85 2240호 2013.10.20  주위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어도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없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도는 왜 하고, 성당에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209
84 2239호 2013.10.13  ‘진리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로 표현될 수 있나요? 권순호 신부  146
83 2238호 2013.10.06  흔히 기복신앙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왜 잘못되었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홍경완 신부  1629
82 2237호 2013.09.29  성경을 효율적으로 읽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는 어떤 성경을 선택하면 좋을까요? 신부님께서 기쁠 때와 슬플 때 용기가 필요할 때에 읽고 도움을 얻는 성경도 알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262
81 2236호 2013.09.22  성체를 모시면서 제가 깨끗하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고, 이게 모령성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같은 내용으로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부담됩니다. 홍성민 신부  223
80 2234호 2013.09.15  저는 오랫동안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 활동을 하였습니다. 저의 봉사와 희생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의 삶에 아무 이익이 되지 않는 시간 낭비였다는 회의가 옵니다. 권순호 신부  149
79 2233호 2013.09.08  “창세기 첫 부분이 설화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탄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지인의 질문에 답이 막혀버렸습니다. 홍경완 신부  113
78 2232호 2013.09.01  세례 대부님과는 연락이 없습니다. 견진 대부님을 새로 정하라는데,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장재봉 신부  354
77 2231호 2013.08.25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에서 성령 카드 뽑기를 하였는데, 제가 뽑은 성령의 은사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려움이 성령의 은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야 은총 아닌가요? 홍성민 신부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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