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48호 2013.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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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성민 신부 |
구약에 묘사된 하느님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곤 합니다. 백성들에게 심판의 벌을 내리시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는 다른 민족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대하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왜 구약에서의 하느님 모습은 그러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홍성민 신부
어릴 적 저희 집 거실에는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예수 성심상과 성모 성심상이 그려진 액자가 양쪽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거실을 지날 때마다 늘보던 표정과 눈빛이었지만, 늘 같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일을 한 날에는 그림 속의 예수님과 성모님이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듯 하였습니다. 반대로 양심에 걸리는 일을 했거나, 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마치 저를 잡아먹을 것 같이 무서운 눈빛과 분노에 찬 표정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마음을 바꾸곤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두 얼굴,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신 하느님의 모습과 우리의 모든 잘못과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심판하실 하느님의 모습은 분명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다른 얼굴은 하느님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생각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백성들이 유배로 끌려가고, 다른 민족들에게 침략당했던 시절에는 구원의 하느님, 위로의 하느님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의 안일함에 빠져 하느님을 등지고 살아갈 때에는 심판의 하느님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서로 다른 모습이 아니라, 백성의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도 지금 어떤 하느님의 모습을 보며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