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31호 2013.08.25 
글쓴이 홍성민 신부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에서 성령 카드 뽑기를 하였는데, 제가 뽑은 성령의 은사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려움이 성령의 은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야 은총 아닌가요?

 

홍성민 신부(임호성당 보좌) parvus@hanmail.net

 

많은 경우에 우리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은 가장 두려운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내 죄에 대한 심판으로 벌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 역시 너무나 큰 부담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느님이 두렵습니다.

 

주일미사에 빠지면 한 주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성사를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욱 성당에 가기 싫게 합니다.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어쩌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어머니는 어린 저를 데리고 장을 보시는 것이 힘드셔서인지, 시장골목의 가게에서 음식을 시켜주시고는 잠깐 여기 있으라고 하시고 혼자 장을 보러 가셨습니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이 기억납니다. 혹시나 어머니를 영영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인에게 두려움이란 하느님께서 나를 심판하시고 내 죄를 벌하시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하느님을 잃어버릴까 봐,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날까 봐, 내 욕심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내 의지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깝게 하고, 멀어지지 않게 나를 붙잡아줍니다. 그러기에 이런 의미에서 ‘두려움’은 성령의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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