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019호 2009.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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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백창희 프란체스카 |
올 여름, 나는 우리 주보 ‘누룩’에 글을 게재하고 있는 루시아 수녀님이 계신 필리핀 나보따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보따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내가 아는 빈민촌은 좀 낡고 허름한 집에 구불구불한 비탈길, 실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이 정도였다. 그런데 이곳 나보따스에 와서야 그것이 오히려 얼마나 좋은 환경인지 알게 되었다. 비만 오면 넘쳐 집들을 잠기게 만든다는 강은 쓰레기로 뒤덮힌 거대한 하수구다. 옆에만 가도 악취가 진동하는 그 강에 사람들은 얼기설기한 판잣집을 짓고 살며 밥도 해 먹고 아기도 낳고 개와 돼지도 키우며 울고 웃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다. 비록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에게 없는 것은 돈과 알 수 없는 미래뿐인 것 같았다.
손바닥만한 햇빛도 들지 않아 동굴 같이 어둡고 오물로 뒤덮힌 작은 골목을 지나는 내 입에서는 끊임없이 “너무해, 이건 말도 안 돼”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신발을 버릴까 발을 내딛기도 어려울 만큼 더러운 골목을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지나는 우리를 바라보는 어른들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이곳에서 “와, 여기 비하면 우리는 행복한 거네, 대한민국은 진짜 잘 사는 나라구나”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미래가 그 곁에 하릴없이 서 있는 어른들의 미래와 같다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누가 저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누가 저 아이들에게 미래를 줄 수 있을까?
나보따스에서 ‘엔젤’로 불리는 루시아와 데레사 수녀님. 수녀님들은 부끄럽다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정말 천사였다. 루시아 수녀님이 길을 지날 때면 아이들과 어른들은 서로 수녀님 손을 잡고 이마에 대며 축복을 바란다. 그러면 수녀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지저분한 손을 잡고 안아주며 환한 미소로 답한다. 그들은 모두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유치원에 와서 공부하고 먹고 뛰어 노는 아이들과 부모, 그 이웃이다. 간호사 출신인 데레사 수녀님은 매일 동네 사람들을 치료하신다. 크고 작은 상처와 병을 안고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들에게 수녀님들은 진정한 ‘엔젤’이 아닐까. 나보따스엔 빈민들만 사는 게 아니었다. 천사도 함께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천사가 되어 주고 싶다.
(교구 홍보전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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