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43호 2017.07.16. 
글쓴이 김상진 요한 

어린 시절 라틴어 미사가 그립다
 

김상진 요한 / 언론인 daedan57@hanmail.net
 

  어린 시절에 참례했던 미사는 거의 라틴어로 진행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뜻도 모르는 라틴어 미사 경문을 따라 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미사  중에 사제가“도미누스 보비스꿈.”하면 신자들은“엣꿈 스삐리뚜 뚜오.”라고 응답했다. 요즈음의“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또한 사제와 함께.”다. 그 시절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까지 라틴어를 따라 했다. 또 그 시절 본당 신부님의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서라기보다 미사 중에 주례사제가 신자들을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미사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례사제 제의 등 쪽에 새겨진 황금색 십자가만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사제가 신자들과 마주 보며 올리는 미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1965년부터 도입됐다.
  미사도 요즈음보다 20∼30여 분은 더 길었던 것 같다. 미사 20여 분 전에 성당에 와서 두꺼운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성체 후에는 거의 성가를 부르지 않았다. 영성체한 신자들이 침묵 시간을 즐기게 하려는 배려였다. 미사가 끝난 후에도 제자리에 앉아서 내 안에 오신 주님과 대화하는 신자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걸어서 미사를 보고 가노라면 2시간은 족히 걸렀다.
  자매들은 모두 머리에 흰색 미사보를 쓰고 미사에 참례했다. 형제들도 깨끗한 한복을 차려입고 나왔다. 간혹 미사보를 잊고 온 할머니들은 성당 앞줄에 감히 앉지 못하고 뒤쪽에서 미사를 봤다. 앞줄에 앉아서 미사보를 찾다가“에쿠 미사보를 안 가져왔네.”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뒤쪽으로 가던 모친이 생각난다.
  마룻바닥 성당이어서 성당 입구에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제대 앞쪽부터 줄을 맞춰서 앉았다. 맨발이다 보니 여름에는 개구쟁이들의 심한 발냄새가 코를 찔렀다. 겨울에 마루판 옹이구멍 난 곳에 앉은 날이면 솟구치는 냉기에  몸이 얼얼했다.
  요즈음 미사는 그 시절에 비하면 참 편하고 좋다.
  사제가 우리말로 봉헌하는 미사는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강론도 이해하기 쉽다. 유머가 섞인 강론은 재미도 있다. 장궤틀에서 미사를 참례하니 앉았다 일어서기도 좋다. 냉난방 시설이 좋아서 한겨울과 한여름도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나는 어린 시절의 불편했던 미사가 그립다.
  요즈음 미사보를 쓰지 않은 채 노출 심한 옷차림의 자매들, 아웃도어 차림의 형제들, 미사 시작 전에 들리는 잡담 소리, 미사 끝나기 무섭게 성당 밖으로 나가는 신자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미사는 거룩한 봉헌행위로 가장 큰 기도이다. 영성체로 내 안에 오신 하느님을 만나는 절대적 시간이다. 좀 더 옷차림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참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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