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배우는 겸손

가톨릭부산 2017.07.12 10:25 조회 수 : 82

호수 2443호 2017.07.16. 
글쓴이 김성중 베드로 
농촌과의 참된 연대를 위한 2017년 부산교구 신학생 농촌 체험 활동 후기
땅에서 배우는 겸손

김성중 베드로 / 학부 4년, 하단성당

  방학을 하루 앞둔 신학교에서의 학기 마지막 밤, 이전처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곧바로‘농활’이라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그 활동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체험한다는 기대보다는, 힘들었던 시험 기간을 바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이기적인 생각과 함께 고된 노동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농활 첫날, 논에서 피를 뽑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피와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작업 내내 허리를 굽히고 땅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는 이런 동작에서 땅이 말해주는 중요한 가치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고되고 허리 아프고 보잘것없는 일,‘이 시간이 지나 빨리 쉬고 막걸리나 마셨으면’하는 정도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문득 겸손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땅을 보면 겸손을 알 수 있다. 땅은 늘 모두에게 밟히지만 모든 것을 지탱하고 모든 것을 낳는다.’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았다.‘나는 겸손한 사람인가? 땅으로 내려오신 주님의 겸손을 따라 사제가 되고 싶다’하면서 방학 중의 편함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을 그리워하는 나는 정말 위선적인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작업 내내 하느님께 기도했다.‘하느님 이 피를 뽑으면서 제 안의 위선과 교만, 이기심, 온갖 나쁜 것들을 함께 뽑게 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이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 뽑는 일은 언양 회장님 말씀대로 핵심적인 일은 아니지만 안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핵심적인 일이 아니라서 경시되기 쉽지만 하지 않으면 핵심이라 생각했던 일들마저 망치게 되는 일, 핵심적인 일을 밑에서 받쳐주는 참으로 겸손한 일, 소리 없는 일이다. 생산직, 건설직, 환경직 등에 종사하시는 분들, 특히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이 땅에 농촌에 남아 정당한 방식으로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바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이 사회의 피를 뽑으시는 귀한 일꾼들이 아닐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안 하면 안 되는 일에는 너무나 무관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을 한국의 청년들은 기피하기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폭력적이고 비인격적인 대우와 이를 막지 못하는 법의 병폐는 너무나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본격적인 방학을 시작하는 나에게 무의식 속에 노동을 기피하려 했던 안일한 마음은 농활과 함께 완전히 변했다. 좀 더 낮은 마음으로 보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땀 흘리는 하늘나라의 농사꾼이 되기로 다짐한다.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393 2875호 2025. 6. 22  대양고등학교 현장에서 피어나는 복음의 불빛 이양수 엘리사벳  25
392 2872호 2025. 6. 1.  오륜대 순교자 성지 교구 역사관 건립을 앞두고 손삼석 주교  13
391 2870호 2025. 5. 18.  레오 14세 교황 약력 file 가톨릭부산  31
390 2868호 2025. 5. 4.  발달장애인선교회 모임을 소개합니다! file 발달장애인선교회  22
389 2867호 2025. 4. 27.  [사회교리학교 주제강좌] 진단, 우리 사회의 극우화 정의평화위원회  27
388 2864호 2025. 4. 6.  제2회 청소년·청년문학상 문예 작품 공모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21
387 2860호 2025. 3. 9  Alter Christus 복음적 사랑의 실천-부산 교구민과 함께 발전한 메리놀병원 75주년이 되다 김두진 신부  20
386 2859호 2025. 3. 2  부산가톨릭농아인선교회 ‘즐거움의 원천 쁘레시디움’ 2,000차 주회를 맞이하며 file 가톨릭부산  54
385 2858호 2025. 2. 23.  6R 탄소단식 숏츠 대회 file 가톨릭부산  17
384 2856호 2025. 2. 9.  똑똑!! 음악교육원이지요? 임석수 신부  13
383 2855호 2025. 2. 2  2년 동안 너무나 행복했던 신학원 생활들 김숙희 카타리나  17
382 2851호 2025. 1. 12  새 사제 모토 및 감사인사 file 가톨릭부산  39
381 2849호 2025. 1. 1  2025년 정기 희년과 전대사 수여에 관하여 file 천주교부산교구  19
380 2841호 2024. 11. 17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행복한 배움터(데레사여고, 부산성모여고, 지산고) file 가톨릭부산  133
379 2839호 2024. 11. 3  가톨릭 정신을 바탕에 둔 창의 인재 양성 대양고등학교 file 가톨릭부산  32
378 2834호 2024. 9. 29  <사회교리학교 주제강좌> “교부들과 사회교리-평화와 자선”에 초대합니다. file 정의평화위원회  48
377 2833호 2024. 9. 22  부산가톨릭대학교 미래설계융합학부 2025년도 신입생 모집 file 부산가톨릭대학교  72
376 2829호 2024. 9. 1  2024 천주교부산교구 “청소년, 청년 신앙체험수기 공모전” file 가톨릭부산  36
375 2824호 2024. 8. 4  음악공부는 간절함이 있어야... - 어느 야간과정 수강생의 고백 임석수 신부  18
374 2823호 2024. 7. 28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요약) 프란치스코 교황  12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